지워진 이름과 살아남은 미소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에서 읽은 고대 이집트 이야기(2)

by 이엔 지민

(이집트를 전공한 것도 아닌 일반인이 여행 가서 찍어온 유물 사진 몇 장을 가지고 그 순서와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버거웠다. 신왕국 유물 이야기를 보기 전에 흐름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 개요를 정리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집트 제18왕조의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시작은 아모세였다. 그는 이민족인 힉소스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주권을 되찾았다. 뒤를 이은 아들 아멘호테프 1세는 나라의 안정을 꾀했으나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다. 왕실은 핏줄 대신 능력을 택하는 파격을 보였다. 당대 최고의 군인이었던 투트모세 1세를 사위로 삼아 왕좌를 넘긴 것이다. 군인 출신 파라오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왕실의 사위라는 모호한 정통성을 메우기 위해 전임 왕의 누이와 결혼하며 권력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투트모세 1세의 자식들인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2세는 남매이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트셉수트는 정비인 아흐모세의 딸이었고, 투트모세 2세는 후궁의 아들이었다. 병약했던 남편 투트모세 2세가 요절하자 왕위 계승권은 후궁이 낳은 어린 아들 투트모세 3세에게 돌아갔다. 야심 컸던 계모 하트셉수트는 어린 의붓아들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파라오가 되어 통치했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진정한 왕이 된 투트모세 3세는 그동안의 울분을 토하듯 정복 전쟁에 매진해 제국을 최대로 넓혔다. 이 강력한 힘은 아들 아멘호테프 2세와 손자 투트모세 4세를 거쳐, 증손자인 아멘호테프 3세 때에 이르러 최고의 황금기를 꽃피웠다.

영광은 길지 않았다. 그의 아들 아크나톤은 기존의 신들을 부정하는 종교 개혁을 일으켜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크나톤의 정비는 이집트 최고의 미녀 네페르티티였으나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했고, 후계자는 후궁 소생인 투탕카멘이었다. 투탕카멘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네페르티티의 딸이자 이복누이인 앙케세나멘과 결혼해야 했다. 아크나톤이 죽고 난 뒤 9살짜리 소년 투탕카멘이 위태로운 왕좌에 앉으며 화려했던 18왕조는 저물어갔다.






셉 축제의 아멘호테프 1세, 영원한 젊음을 꿈꾸다

신왕국8번.jpg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옷은 미라의 붕대가 아니라 셉 축제의 예복이다. 상이집트의 백관을 쓰고 두 팔을 교차해 곡괭이와 도리깨를 쥔 모습은 오시리스의 자세와 같지만, 여기서는 죽음이 아닌 재생을 의미한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에게는 즉위 30주년이라는 두려운 데드라인이 있었다. 왕의 힘이 쇠약해지면 제국도 병든다고 믿었기에, 30년이 되면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셉 축제를 열어야 했다. 왕은 달리기와 사냥으로 체력을 증명한 뒤 이 조여 오는 예복을 입고 옥좌에 앉아 자신이 다시 태어났음을 선포했다. 제국을 호령하던 절대 권력자라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던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하는 증거다.


그림자 속의 승리자, 무트노프레트 왕비

신왕조4번.jpg

무거운 가발을 쓰고 코브라 장식을 단 채 정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매우 정적이다. 그녀는 투트모세 1세의 아내이자 투트모세 2세의 어머니다. 이집트 왕실은 늘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무트노프레트는 왕의 아내였지만 서열 1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비가 낳은 아들들이 요절하자 왕위는 숨죽여 살던 그녀의 아들에게 돌아갔다. 이 석상은 왕이 된 아들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봉헌한 것이다. 이마의 선명한 코브라는 나의 어머니가 진정한 왕의 어머니다라는 아들의 뒤늦은 선언과도 같다.


하트셉수트, 여왕이기를 거부한 파라오

신왕조2번.jpg

파라오의 두건을 쓰고 가짜 수염을 단 채 둥근 항아리를 들고 무릎을 꿇고 있다. ”나는 여왕이 아니라 왕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남편이 죽었을 때 투트모세 3세는 젖먹이에 불과했다. 하트셉수트는 스스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며 최고의 신 아문이 나의 아버지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항아리에 담긴 와인이나 우유를 신에게 바치며 무릎을 꿇은 행위는 최고의 겸손을 의미한다. 자신이 정당한 왕임을 인정받고 싶었던 간절함이 엿보인다. 왕이면서도 생물학적 성별을 지워야 할 만큼 차별의 벽은 단단했기 때문이다.


지워진 이름, 그러나 남겨진 증거

신왕조2번-1.jpg

하트셉수트의 등 뒤에는 의붓아들 투트모세 3세가 남긴 복수의 흔적이 있다. 기둥 위 상형문자 중 주인공의 이름 부분만 흉물스럽게 뜯겨 나갔다. 매끈한 글씨보다 상처 입은 빈칸이 여기에 지우고 싶을 만큼 강력했던 왕이 있었다고 더 크게 증언하는 것 같다. 석상 곳곳에 깨지고 붙인 자국이 선명하다. 그녀가 죽은 뒤 투트모세 3세는 모든 기록을 파괴해 구덩이에 버렸고,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이를 퍼즐 맞추듯 다시 이어 붙였다.


산산조각 난 붉은 얼굴들

신왕조2번-3.jpg

진열장 안 붉은 얼굴들은 부드러운 여인의 선을 가졌으나 남성의 색인 붉은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여성이 아닌 왕으로 살고자 했던 그녀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자마자 의붓아들은 모든 조각상을 부쉈다. 돌을 깨면 그녀의 통치도 사라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몸통이 잘린 채 머리만 남아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다. 파괴된 돌무더기 속에서 기어이 살아 돌아온 그녀의 생명력 앞에서 지우려 했던 자의 증오보다 기억되려 했던 자의 의지가 더 강했음을 확인한다.


제국의 정복자, 투트모세 3세

신왕조7번 투트모세3세.jpg

하트셉수트의 그늘에서 22년을 기다린 왕이다. 그는 군대에서 힘을 길렀고 여왕이 죽자마자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릴 만큼 재위 기간 17번의 원정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집트 영토를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한 승리자답게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매부리코 아래의 그 미소가 서늘하다. 하트셉수트의 얼굴들을 다 잘라내 버린 다음에 지었을 미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에게 바친 개인적인 기도

신왕조30번.jpg

비석 중앙의 스핑크스 앞에 평범한 옷을 입은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신왕국 사람들에게 기자의 스핑크스는 이미 1,000년 된 고대 유적이었다. 투트모세 4세가 스핑크스 덕분에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스핑크스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비석의 주인도 그 유행을 따라 자신만의 기념품을 만들어 바쳤다. 거대한 석상 앞에서 개인적인 소망을 비는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간절함을 읽는다.


눈부신 태양, 아멘호테프 3세

신왕조18번 아멘호테프3세.jpg

투트모세 3세가 넓힌 영토 덕분에 그는 전쟁 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자신을 눈부신 태양이라 불렀던 그는 투탕카멘의 할아버지다. 전사의 날렵함 대신 통통한 볼과 두툼한 입술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귀공자의 풍요로움이 흐른다. 룩소르 신전을 확장하고 이집트 전역에 압도적인 크기의 석상을 세웠던 그의 시대에 이집트 문화는 가장 세련되고 사치스럽게 피어났다.


제국의 어머니, 티예 왕비

신왕국5번.jpg

풍성한 가발을 쓴 얼굴에서 당당하고 지적인 인상이 풍긴다. 평민 귀족 출신이었으나 왕의 깊은 사랑을 받아 제1왕비가 된 인물이다. 왕이 그녀의 이름을 새긴 기념품을 전역에 뿌릴 만큼 사랑받았고, 남편과 동등한 크기로 조각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철의 여인이었다. 아들의 종교 혁명과 손자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제국의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채 박물관에 있지만, 야무진 눈매만은 여전히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파괴와 치유의 두 얼굴, 여신 세크메트

신왕조17번.jpg

암사자 머리를 한 세크메트 여신이다. 아멘호테프 3세는 노년에 병을 앓으며 치유를 위해 700개가 넘는 세크메트 석상을 만들었다. 인류를 전멸시키려 했던 파괴의 여신이 병을 거둘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위협적인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발치에 있는 왕을 묵묵히 지키는 모습에서, 강력한 힘은 파괴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킬 때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황금의 관리자, 메리모세의 비석

신왕조27번.jpg

비석의 한쪽에는 저승의 왕 오시리스가 서 있고, 그 뒤를 여신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신들을 마주 보고 서서 공손하게 향을 올리는 남자가 바로 메리모세다. 그는 아멘호테프 3세 시절, 이집트 남쪽 식민지인 쿠시(누비아)를 다스리던 총독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부(富)는 대부분 누비아의 금광에서 나왔고, 메리모세는 그 금광을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아멘호테프 3세 시대의 눈부신 황금 유물들은 실질적으로 이 사람의 손을 거쳐 조달된 것이다.

그는 반란이 일어나면 군대를 이끌고 가서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장군이기도 했다. 살아서는 막대한 황금과 군대를 지휘했던 권력자였지만, 신 앞에서는 한 명의 숭배자로 돌아가 겸손하게 예를 갖추고 있다.


이단자 아크나톤의 두 얼굴

신왕조3번 (2).jpg
신왕조3번 (1).jpg

기괴할 정도로 긴 얼굴과 튀어나온 턱은 태양신을 닮고자 했던 종교적 광기가 만들어낸 아마르나 양식이다. 그는 1,500년 된 신들을 부정하고 유일신 혁명을 일으켜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이 쓸쓸한 얼굴은 투탕카멘의 친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의 신을 버리고 이름을 바꿔야 했다. 아들에게조차 부정당하고 역사에서 철저히 파괴당한 실패한 혁명가의 자화상이다.


신이 된 이단아의 몸

신왕조 3-1번.jpg

처진 뱃살과 풍만한 골반은 이전 파라오들의 근육질 몸매와 대조적이다. 유전병이라는 설도 있지만, 남녀를 초월한 완벽한 태양신을 닮으려 한 중성적인 묘사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신을 사랑해서 미쳐버린 왕, 혹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 고독했던 천재의 고뇌가 기이한 눈빛 속에 서려 있다.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석비

신왕조21번.jpg

오른쪽의 아크나톤과 왼쪽의 네페르티티가 마주 보고 있다. 태양에서 뻗어 나온 손들이 왕 부부에게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건네준다. 태양의 축복이 오직 왕 부부에게만 닿아 있는 모습은 백성이 왕을 통해서만 신을 만날 수 있다는 독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록 개혁은 실패했고 기록은 삭제되었지만, 돌에 새겨진 빛줄기는 신의 본질이 군림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빛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전한다.


투탕카멘의 재무장관 마야와 그의 아내 메리트

신왕조 32번.jpg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에서 가장 우아한 걸작이다. 마야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엄청난 황금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단단한 석회암을 비단처럼 깎아 옷의 주름 하나까지 섬세하게 살려냈다. 아내 메리트가 남편의 어깨에 올린 손길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화려했던 18왕조는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그 마지막을 지켰던 이 부부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하다.

불안했던 제국과 뒤엉킨 권력의 끝자락에서 아홉 살 소년 투탕카멘이 왕좌에 올랐다. 아버지가 파괴한 세상을 되돌려야 했던 소년 파라오의 짧고도 화려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