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과 바지끈

by 최기린

혼자 살 무렵, 나는 언제나 츄리닝(트레이닝복이 표준어이지만 츄리닝이 입에 감기니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이 표현하겠다.) 고무줄을 완전히 빼서 버리곤 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바지끈이 바지 속으로 말려들어가면 내 혼자 힘으로는 이를 빼지 못했는데, 그럴 바에는 그냥 진작에 내 손으로 빼버리자는 생각에서였다. 가장 애정하는 나이키 츄리닝 바지 역시 그 당시에 구매하였고, 당연히 사자마자 고무줄을 빼버렸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자취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지금, 나는 더이상 바지끈을 빼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고무줄이 빠지면 가족에게 고무줄을 끼워달라 부탁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무엇보다 살이 빠져 바지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바지는 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가장 애정하는 나이키 츄리닝 바지만큼은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바지끈용 고무줄을 구매할 결심을 하였던 터에 되도 않는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바지에 끼는 그것은 고무줄이라고 부르는가 바지끈이라고 부르는가?"


내 생각에 바지 고무줄은 좀더 얇고 넓은, 바지에 이미 내재되어 있어 빼고 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그런 것이었다. "바지 고무줄이 늘어났네" 라고 말할 때 바로 그 허리 그 스판 그 재질을 생각한 것이다.


그럼 바지끈이 맞는가? 그러나 바지끈은 신발끈과 같이 왠지 어디 끝자락에 있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일종의 발목쪽 시보리 그러한 재질의 것이 연상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는 네이버 쇼핑에만 검색해보만 되면 해결될, 지나칠 정도로 간단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서 그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미 오기가 생겨 겨우 인터넷으로부터 답을 구하기 싫어졌다. 마치 어떤 수수께끼를 들었을 때, 답을 전혀 모르지만 '나 그거 알아. 아니까 답 말하지마.'라고 고집을 부린 셈이었다.


출근하는 2시간여 동안 이를 고심해보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아니하였다. 결국 네이버 쇼핑에 이를 검색해보는 수밖에 없던 터였다. 그리고 검색 결과, 아뿔싸, 네이버 쇼핑은 이를 병행하여 표기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복수 정답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과 아래 하릴없이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고무줄(혹은 허리끈)을 구매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바지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하여 바지를 살펴 보던 중, 내 나이키 바지에는 애초에 허리끈(혹은 고무줄)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회상컨대 내가 이 바지를 아꼈던 이유 중 하나가 고무줄(허리끈)을 빼지 않아도 되어서였던 것이었다.


2시간의 고심과, 그 끝의 허무함마저도 무위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무얼 위해 고민하였고 무얼 위해 실망했던 것인가. 미리 확인해보지 않은 내 자신을 탓하기에도 이미 지쳐버렸다. 내 바지에는 당연히 고무줄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고, 허리끈이 있다는 전제에 진행했던 일들이 모두 일그러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 켠으로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만일 이 바지에 바지끈이 필요했었더라면, 나는 배송비를 아까워하며 고무줄을 시켰을 것이고, 가족에게 바지끈 삽입을 부탁했을 것이며, 이 나이 먹도록 바지에 고무줄도 못 꿰냐는 가족들의 진심어린 비난을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퇴근을 하면서도 나이키 츄리닝은 끊임없이 흘러내렸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이 바지에 고무줄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허리끈을 사지 않아도 되어 헛돈 쓰는 것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츄리닝 바지 허리 줄이는 법 아시는 분 계신가요? 세탁소에서 줄이면 많이 비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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