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공무원 퇴사자는 과연 행복할까요
① 공무원 퇴사자는 과연 행복할까요
"뭐? 공무원을 때려치워? 이런 미친 XX"
예상했던 난관이다. 역시나 저항은 거셌으며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밖에서의 반응이 그럴진대 집에서의 반응은 거의 절망이었다. 특히 부모님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3남매, 사위, 며느리까지 나름 그럴듯한 직장 다니며 효도 아닌 효도를 하고 순탄한 인생이었는데 갑자기 큰아들이 여행작가를 하겠단다. 그것도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그랬다. 이 시국에 공무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나는 '차디찬 정글'로 던져졌다.
나는 공무원이었다. 난 홍보 전문 공무원이었다. 외부 대행사 시절의 커리어를 인정받아 10년 가까이 지자체 홍보담당 전문 공무원으로 재직했다. 공무원이라 하니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전문직 공무원이었기에 생각보다 엄청 다이내믹하고 안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해왔다. 나의 능력과 성과를 매 분기 증명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다행히 크게 힘이 들진 않았다.
지자체의 홍보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다. 도시의 홍보전략을 짜고, 매체 플래닝, 광고 콘텐츠 제작, 광고 집행 같은 일들을 종합적으로 경험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 막대한 예산을 쓰는 일인 만큼 그 책임감과 압박감도 상당하다. 절대 민간 대행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꿀 같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행정에서는 의원면직이라는 재미없는 말을 쓴다)는 글쓰기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여행과 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마음으로 품어온 여행작가라는 꿈. 그리고 여행을 더 깊게 그려보고 싶은 콘텐츠 에디터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 더 늦으면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사진'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카메라 하나 들고 시작되었던 방랑생활. 대학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 그런 삶을 살아왔었다. 그리고 늘 꿈을 꾸었다. 낯선 곳. 낯선 이들과 채워가는 나의 인생을. 눈앞의 풍경과 그리고 그 풍경의 구성원인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인생을. 시간이 갈수록 북적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그런 소소한 만남이 훨씬 더 즐거웠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고 난 그냥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또 누구나 그러하듯 매일 엄습하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스트레스, 반복되는 야근, 지쳐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들에 허덕이며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매일 오는 현타와 싸워야 했다.
'내가 이놈의 직장을!'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너무 달콤했다. 나의 신분은 안정적이었으며 매월 세 번에 나눠 들어오는 수당과 월급은 꽤 두툼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전문직 공무원들의 급여는 일반직보다 좀 더 세다.)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다. 매달 받아보는 월급봉투 속에서 잊혀진 것이 있었음을.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나의 꿈. 나의 일! 직장 생활의 무서움은 일정 정도의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사는지에 대한 감을 완전히 무뎌지게 하는 것에 있다.
내가 그랬다.
'직장인'이 된 뒤로는 나의 꿈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 줄도 모른 채로 살아왔다. 꿈은 고사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줄도 몰랐다. 그렇게 속절없이 부지불식간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나의 꿈은 저 아래 어디만큼 박혀있어 꺼내기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한번 박힌 꿈은 마치 장롱 속 맨 아래에 깔려있는 이불을 꺼내는 것처럼 어려웠다. 깔린 이불을 꺼내려면 위에 쌓인 이불이 쓰러져 나에게 넘어올 것만 같다. 아무리 조심조심 꺼내어도 잘 정돈되었던 이불이 본래 모습과 달리 이리 틀어지고 저리 틀어진다. 그리고 마침에 꺼내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처음 정리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장롱문은 닫히지 않기 일쑤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이 딱 그러했다. 일단 저만치 깔려있는 나의 꿈을 도대체가 꺼낼 길이 없어 보였다. 그 꿈을 끄집어내면 지금껏 내가 쌓아온 명성과 성과가 쓰러질 것이 뻔했으며 설령 꺼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처음으로 돌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어지럽혀질 것이 뻔했다. 이것을 포기하면 저것이, 저것을 포기하면 이것이. 딜레마였다.
어떤 이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줬으며 어떤 이는 나이 먹고 정신 못 차린다며 한심해했다. 고맙게도 동료 직원들과 상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거냐며 걱정해주었다. 그리고 그만두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이 밖의 삶이 이토록 처절하고 치열한지를. 공무원 시절엔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아니, 세상에 무신경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모든 것이 직장 안에서 해결됐다. 알다시피 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인맥이 된다. 그런데 나와보니 내 손으로 단돈 만 원을 벌기가 이렇게까지 힘들다니.
이제 사직서를 내고 저만치 밑바닥에 깔려 있던 나의 꿈을 꺼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내 주변, 그리고 내가 쌓아온 나의 이미지, 그동안 달성해온 성과들. 모든 것이 틀어지고 변화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잠시 동안의 위기를 또 다른 성과로 돌리기 위한 시작점에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는 도전. 끝을 알 수는 없다.
도전의 끝은 성공으로 열매 맺어야 아름다운 스토리로 미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 이야기는 묻히고 만다. 그럼에도 또 도전하는 이유는 그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을 잡아 알차게 열매 맺는 스토리를 만들어 보기 위해 묵묵히 가보련다. 그 성공이 경제적 성공이든, 또는 가치의 성공이든 무엇이라도 좋다. 여행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간다면 이전의 삶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본다. 내가 해왔던 보통의 여행을 글로 풀고, 여행의 방법을 이제 드디어 꺼낼때가 되었다. Ⓒ인조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