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생활 즐기기 #23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 차 덜그럭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중략)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
정현종 시인의 [낮술] 중에서
호주 시드니에 안착한지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집을 구하랴, 전화기를 개통하랴 정신없이 지낸 나로서는 아직 시드니 관광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12월인데도, 춥기는커녕 남방구에 위치한 덕분에 햇볕이 쨍쨍 내리째는 한여름 날씨였다.
싸구려 선글라스를 챙겨 들고 셰어하우스를 나섰다.
사실 딱히 관광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집 근처에 밥 먹을 곳은 어디고 이용할만한 장소가 있는지 물색하기 위한 주변 탐방이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예술품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중세스러웠다.
들어가도 되는 건물인가 생각이 들어 안을 들여다보니, 백화점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조금 더 걸어가자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뜨거운 날씨에 바깥을 돌아다니다 보니, 땀도 나고 목도 말라서 음료수를 판매하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광장에 판매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파라솔 아래에 앉아서 즐겁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외국 분위기 제대로 나는구나'
뭘 마시나 볼까.
그건 바로 '맥주'였다.
처음 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맥주를 한낮에 밖에서 먹다니...'
한국에서 그랬다면 다들 한심스러운 듯이 쳐다보면서 지나갔을 것이다.
무언가 짜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럼 나도?!'
빅토리아주를 대표하는 Victoria Bitter를 사서 한모금을 들이켰다.
한낮에 길거리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먹는 차가운 맥주의 한 모금은 아마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자유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맥주 한잔의 가격으로 자유를 한번 사보는건 어떨까
다가오는 이번 주말에는 낮에 맥주 한잔 어떤가요.
바쁘게 지내온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