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즐겨보자 나의 인생.
겨울과 봄의 중간쯤 되는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함께 계룡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모든 생명체들이 기지개 펼 때, 우리도 봄기운을 느껴보고자 등산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매해 1월 1일에 계룡산으로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해 첫날에 계룡산의 기운을 받아야 한 해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실제로 처음 대학교 선배와 등산한 년도에 좋은 일들만 생겨서 어느 순간 나만의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2000원이라는 입장료와 함께 시작된 우리의 등산.
'중간에 가다가 힘들면 그냥 내려와야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별 부담 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앞서 걸으며 마라톤에서 말하는 페이스러너처럼 페이스 조절을 해가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파르지 않은 초반의 등반에 안도하며 오른 결과, 중간지점 정도의 폭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더 올라갈까? 그만 올라갈까?
내적 갈등을 겪으며 다시금 정상을 보겠노라 라는 생각과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되뇌며 올라갔다. 어느새 여자친구는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으며, 뒤쳐져서 한발 한발 딛으며 올라갔다.
만약 내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일 해야 되는데 무리하지 말자 라며 내려 왔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 친구들이랑 왔으면, 내려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며 내려 왔을지도 모른다.
자존심을 연료로 삼아, 결국엔 정상을 밟았다.
산은 정상을 밟아봐야 등산하는 맛을 알게 된다고 했나? 정상에서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시원한 바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냈지만, 해냈다는 뿌듯함
툭 터인 드넓은 시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박차고 나가 등산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상쾌한 기분도 잠시 경주하듯 산을 내려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의존하여 다시 밟은 땅.
운동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항상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하던 내가 무리하게 움직였던지, 다리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한쪽 다리는 괜찮았지만, 반대쪽 다리는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나에게 가져다 줬다. 하지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날을 보냈다.
.
.
.
‘ 괜찮아지겠지...’
.
.
.
하지만 생각만큼 다리는 호전되지 않았고, 일주일 내내 일이 있어서밖에 나갈 때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리를 다녀야 했다.
순간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 아니겠지 라는 두려움 또한 들기 시작했다. 그 때야 말로 내 생애에서 가장 내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하던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에 흐르는 귀차니즘은 병원은 안 가도 돼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2주일째, 다리는 계속적으로 아팠다.
글로는 짧게만 느껴지는 2주지만, 실제로 아픈 다리로 생활하는 2주는 나에겐 2년처럼 느껴질 만큼의 긴 시간이었다. 몸뿐만이 아닌 걱정 어린 마음까지 곁들여져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렀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 걸음부터 시작했다. 다리를 살짝 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나의 인대가 인대가 어느 부위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의 인대가 끊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 속에서 다리를 계속적으로 올리며 운동을 계속했다.
지속된 운동 때문이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자연 치유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다리는 얼마 시간이 지나 치유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병원을 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때에는 무리한 등산으로 인한 다리 기능 불능 같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한편으론 안일하게 한편으론 불확실 속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냈던 것 같다.
결국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내 자신이 병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의 병까지 같이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몸이 불편하게 되면 마음과 몸 모두 힘이 들게 된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라면 몸이 방치되어 건강상에 문제가 발생될 수가 있다. 게을러 지기 쉬운 자신을 그저 방치하지 말고 건강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 백수 생활을 즐기기 위한 첫 걸음이다.
꾸준한 운동은 맑은 정신건강까지도 챙겨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