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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Jun 27. 2023

아임 낫 어 스톤(I am not a stone.)

문학 잡지 창간, 제주도 한 달 살기...... 애완용 돌...

    그와의 첫 대면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방안을 가득 메운 열기와 그래서 더 역하게 목구멍을 틀어막는 썩은 내. 금세 적응하는 감각이 후각이라지만 기억이라는 변수는 어쩔 수 없다. 그건 절대 무감각해질 수 없는 반사 반응이란 생각마저 든다. 양치질할 때 칫솔을 목젖 가까이 밀어 넣으면 구역질을 동반하는 것처럼 후각으로 전해진 그 생의 끝은 내 온 신경을 강하게 밀어내려 했다. 

    “와... 이건 뭐... 우욱...”

    비위 좋은 이 경위조차 선뜻 집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하기야 열대야가 지속되는 한여름날,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둘러 입은 보호복에 마스크만으로도 숨쉬기가 힘든데 창문을 꽁꽁 잠가 건 집안은 그야말로 열대우림 자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건 시체꽃이 아닌 진짜 시체, 그였다. 

    현장 감식반이 주춤하는 새, 거실 겸 방으로 쓰는 공간의 광경을 사진 찍듯 빠르게 훑었다. 살림살이는 단출했다. 양 떼를 거느리고 풀밭을 걷고 있는 예수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접이식 상이 베란다 쪽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엔 전원이 꺼진,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랩톱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인 감기약 봉지 더미와 쓰러진 물컵, 바닥에 하얗게 깔린 구더기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좁은 공간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전기장판, 그 위로 타버린 마네킹처럼 누워 있는 그였다. 이런 날씨에 전기장판이라. 수많은 질문이 냄새처럼 몸에 와 덕지덕지 붙었지만 해적들이 쓰던 속담을 이런 때 쓰는 건가.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마지막 인터넷 검색 기록은 찾아봤어?”

    “네. 여기 있습니다.”

    이 경위가 기다렸다는 듯 내 쪽으로 돌아앉으며 답했다. 그리고 종이에 적어둔 걸 쇼핑 리스트처럼 술술 읽기 시작했다. 

    “문학 잡지 창간, 제주도 한 달 살기, 해외 취업, 자취 요리, 재난 지원금 신청, 애완용 돌... 더 할까요?”

    “애완용 돌은 뭐야?”

    “아, 그게 강아지나 고양이 기르듯이 애완용으로 키우는 돌이요. 돌멩이. 그러니까... 동그랗고 딱딱한 그 돌이요.”

    이 경위는 어떻게든 내게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 두 손을 둥글게 말아 보였다. 

    “누가 돌멩이를 몰라서 물어? 쓸데없이 돌멩이를 왜 키우냐고 묻는 거잖아.”

    “아, 그게... 이리 와! 앉아! 굴러! 이렇게 훈련도 하고, 산책도 시키고...”

저도 어색했을 거다. 차갑게 가라앉는 내 표정을 보면서. 그래서인지 이 경위는 슬며시 내게서 시선을 피해 컴퓨터 화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애완용 돌이라니. 차라리 풀포기를 캐다 기르면 길렀지, 자라지도 않는 걸 키운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식의 지점에서 오는 걸까, 흐릿한 물음표 하나가 떴다 사라졌다. 의식 공명 이론이 주장한 무생물의 의식 가능성은 과학보단 철학 쪽에 기울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만약 돌에게 의식이 있다면, 생명이 있다면 수명도 있어야 하고, 죽음도 있어야 하고, 번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됐다. 그저 수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잡념일 뿐이다. 

    “신원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며 다시 이 경위에게 물었다. 

    “이름은 한소원, 만 18세 남자고요, 보호 종료 아동이더라고요.”

    “보육원 출신이야?”

    “네. 얼마 전 퇴소해서 LH 임대 주택에 배치받고, 특별한 직업도 없이 생활 기초 수당하고 자립 수당으로 한 달에 90만 원 정도 받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잡지 창간, 제주도 한 달 살기, 해외 취업, 자취 요리, 재난 지원금 신청, 애완용 돌...

껌을 씹으며 그가 남긴 말들을 곱씹었다. 그는 문학을 좋아했을까,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던 걸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며 무슨 글을 쓰고 싶었던 걸까, 어차피 홀로 된 거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해외로 떠나버릴까도 고민했을까. 그런 꿈들을 꾸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혼자 먹고는 살아야 하니 간단한 자취 요리를 배워야 했을 것이고,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을 재난 지원금 신청하는 법도 알아야 했겠지.  

    그러다가 애완용 돌에서 질문이 멈췄다. 서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자 돌멩이 하나가 덜그럭하고 발부리에 챘다. 반들반들한 자갈이었다. 그걸 다시 발로 차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벌거벗은 채 가슴과 등에는 ‘아임 낫 어 스톤’이라 쓰고 돌 사이를 뛰어다니던 한 사내가 떠올라서였다. 종로의 한 전시관 앞에 크게 내걸린 사내의 이름과 높이 쌓아 올린 예쁘장한 돌들. 그가 원한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이 세상에서 무생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자신에게 살아있다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있고, 되고 싶은 것도 있다고 스스로 외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돌멩이를 툭 찼다. 길가를 오가는 사람들 발에 더는 채지 말라고. 하지만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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