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dbury Jul 11. 2023

메시야의 별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네

    만족하긴 어려운 액수였지만 그냥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지폐뭉치 두께만큼 얇고, 액수만큼 짜디짠 피자 한 조각이 오늘 저녁 식사로 낙점되는 순간이었다. 

    “물건은 잘 넘겼어. 이제 내려가. 아래에서 만나. 기다려. 오늘은 꼭 너와 함께 저녁을 먹을거니까.”

    구식 송수신기가 흙바닥 긁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끊어졌다. 

    제발 피자가 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종말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빠르길 기대하며 가파르고 좁은 계단으로 재빠르게 발을 옮겼다. 

    복도마다 깨진 창문으로 엄청난 부피의 바람이 위협하듯 밀려 들어 철제 계단을 웅, 소리가 나도록 흔들었다.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각종 광고지와 쓰레기는 그나마 피할 수 있었지만 먼지 폭풍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머리서부터 얼굴까지 모두 덮을 수 있는 넓은 머플러를 더 안쪽으로 꽉 부여잡았다. 물론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올라오는 지린 암모니아 냄새를 막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지만. 

    저 멀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M사의 벙커 지역이 보였다. 겉으로 보면 한낱 콘크리트 군락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내부는 융성했던 로마 제국의 부활을 보는 것같다. 아니, 그렇다고 한다.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다. 마치 어릴적 아버지에게서 들은 목성 이야기처럼. 

    아버지는 먼지 폭풍이 닥칠 때마다 우리가 목성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철제 계단 손잡이를 꼭 잡고 발도 못 떼는 어린 아들이 무섭지 않도록 나름 꾀를 내신 셈이다. 먼지 구름으로 둘러싸인 이 기체 덩어리 이야기는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번개로 포장한 후 상상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붙이고 나면 금세 멋진 영웅이 되곤 했다. 먼지 폭풍 때문에 육안으로 잘 볼 수도 없던 목성을 생각하며 내 작은 심장은 어찌나 힘차게 뛰며 설렜던지. 그 영웅이 아버지를 데려가기 전까지는 실로 그랬다.

    철제 계단이 요란하게 떨렸다. 그건 서둘러 지면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내 몸뚱이 탓이 아니었다. 공기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경고음이었다. 먼지 폭풍으로 가시거리가 멀지 않지만 분명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벽에 붙여 숨을 골랐다. 벌어진 머플러 사이로 작은 먼지 입자들이 사방으로 스쳐 여기저기 피부가 패여 상처가 났다. 서둘러야 한다.

    벙커 안의 그들은 정교하고 밀착도가 뛰어난 신소재 강화 필름을 온몸에 붙여 먼지 폭풍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전가옥 같은 그곳에서 나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허상이라고 말했다. 실재를 볼 수 없으니 그럴 수 밖에. 또 누군가는 그들 스스로 벙커 안에서 내부 분열로 서로 죽이고 죽이다가 멸망한지 오래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가 벙커를 열고 들어가 식량이나 옷가지 등을 가져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걸 막아선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들의 세계에 대해 뭔가 아는 눈치였다. 가끔 건물 꼭대기에서 벙커 지역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 난 묘한 상상력이 일었다. 그건 분노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오히려 긍휼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그곳을 바라보며 목성의 무늬를 닮은, 작은 대리석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밟은 그날 건물 꼭대기에서 내가 목격한 건 아버지와 누군가와의 만남이었다. 

    “벙커 안은 지금 전쟁 위기에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또다른 종교 전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 인류는 종말을 아직 받아드릴 수 없고, 이 상황을 타개해 줄 신이 필요합니다. 과학은 또 하나의 종교가 된 지 오래입니다.”

    콘크리트 기둥 뒤의 남자가 말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네.”

    아버지의 한 마디는 매우 단호했다. 

    “이미 우리들 사이에서 당신은 신입니다. 피폐한 이 세상에서 벙커로 구원해 준 구원자란 말입니다.”

    “그 벙커의 용도는 애초부터 그런 게 아니었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 칩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그들을 제어하고 벙커 세계를 영원히 지킬 수 있습니다. 곧 목성과 토성이 지구에 근접할 겁니다. 그때를 이용해 구원자의 재림을 선포하면!”

    남자의 말을 막아서듯 아버지의 손이 그의 뺨을 내리쳤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반사적으로 틀어막은 입에서 숨소리가 다시 안으로 삼켜졌다. 그리고 그후로 아버지는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았다. 뭐, 얼마지 않아 먼지 폭풍으로 추락사했으니 건물을 다시 오를 일도 없었지만.

    그날 남자가 말했던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일을 며칠 앞두고 건물 꼭대기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났다. 

    “60년만입니다. 두 별이 만나 큰 빛을 내는 대 우주쇼랄까요. 아마도 우리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죠.”

    “벙커에서 온 사람이군요. 이 먼지 폭풍 속에서 머플러도 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아버지의 유품을 찾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칩 같은 건데 당신들에겐 필요 없지만 벙커 안 사람들에겐 구원이 되어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걸 제게 주신다고 하고선 사고를 당하셔서 못 받았거든요. 그걸 찾아주신다면 매달, 당신이 죽을 때까지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지급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르죠.”

    아버지가 벙커 지역을 바라보며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목성의 무늬를 닮은 작은 대리석 조각. 난 오늘 그걸 그에게 넘겼다. 그가 그렇게 원한다면 줄 수 밖에. 단지 그 칩의 용도에 대해서 그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공기의 진동이 더 커지고 있었다. 먼지 폭풍도 그와 함께 더 강하게 밀려왔다. 벙커 지역 쪽에서였다. 계단 손잡이를 꽉 잡고 목성 안에 있다고 상상했다. 번개가 쏟아지고 큰 덩치의 먼지 폭풍이 건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은 모른다. 아버지가 왜 그 칩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는지. 왜 그곳을 바라보며 긍휼한 눈빛을 보냈었는지. 

    먼지 폭풍과 공기의 큰 진동이 지나간 자리는 태곳적처럼 고요했다. 

    “살아있어? 어디야? 빨리 와. 저녁 같이 먹자며.”

    구식 송수신기 소리에 멍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어, 거의 다 내려왔어. 다행히 죽진 않은 것 같아.”

    “와... 근데 저 하늘 좀 봐! 별이 저렇게 크고 밝게 빛나는 건 난생 처음 봐.”

    깨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목성과 토성이 만나 가장 밝게 빛나는 메시야의 별. 그 별이 드디어 떴다.  


작가의 이전글 아임 낫 어 스톤(I am not a sto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