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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Jul 24. 2023

신의 은총

제발 그만 좀 울어! 그만 좀 울라고!

    초이를 낳은 건 신의 은총이 아니었다.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자면 신의 이기적인 계획이라고 말할 수밖에. 하기야 선배와 결혼한 건 뭐 내 계획이었나. 그것 역시 야속한 신의 계획이라고 말할 수밖에. 이 세상 모든 기혼자가 결혼한 후 이렇게 고백한다지. 

    내가 그때 미쳤었지. 

    난 종종 그때의 상황을 신이 쳐 놓은 달콤한 덫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완벽하게 닫힌 결말로 치닫는 삼류 로맨스 영화처럼. 그날은 왜 쓸데없이 폭우가 쏟아졌을까. 그리고 선배의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왜 무자비하게 내 동공을 뚫고 들어와 다양하고도 복잡한 호르몬들을 뿜어냈을까.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햇살처럼 사정없이 쏟아부어 지던 옥시토신과 도파민, 아드레날린, 에스트로젠. 무슨 호르몬 파티도 아니고, 내 몸과 감정을 온통 앞뒤, 좌우, 사방팔방으로 뒤섞어 놓던 그 멜랑꼴리한 마법의 시간. 그러게 덫은 언제나 매력적이라 하지 않던가. 

    으앙! 으으앙! 

    그런 쓸데없는 환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초이가 이유 없이 우는 새벽 한 시는 내게 영원히 깰 수 없는 악몽처럼 가혹하기만 하다. 성악을 전공한 선배를 닮아서일까. 단전부터 끌어 올려진 저 울음소리는 내 몸에 난 털들이 얼마나 뾰족하게 그 끝을 세울 수 있는지 확인 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그만 좀 울어라, 제발. 

    초이를 급히 안아 올리자 한숨인지, 중얼거림인지 알 수 없는 주문이 계속해서 내 입가를 맴돌았다. 그런다고 멈춰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단 걸 수십, 수백 차례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런 간절함을 담은 의식은 짧게는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에 걸쳐 계속된다. 이 시간, 신의 은총은 없다. 

    한 손으로 초이를 바짝 당겨 내 몸에 고정하고서 다른 손으로 겨우 선배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디야? 왜 안 들어와? 

    전화 저편에서 알 수 없이 뒤엉킨 소리가 이쪽으로 건너왔다. 남자와 여자,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그리고 음악 소리와 누군가 부르는 노랫소리까지. 혼합된 것들이 이루는, 제멋대로 휘청이는 소리였다. 난 그 속에서 선배의 목소리만 골라내려 휴대전화를 더 바짝 귀에 붙였다. 하지만 선배는 점점 더 작아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뭐?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며... 하지만 선배, 초이가... 여보세요? 여, 여보세요? 

    까마득히 높은 벽에 대고 홀로 외치는 소리. 내 목소리는 또다시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졌다. 

    휴대전화를 소파로 내던졌다. 성질 같아선 바닥으로 힘껏 내리꽂아 버리고 싶었지만 내 마지막 이성이 아직 갚지 못한 할부금을 떠올리게 했다. 괜히 초이의 등을 토닥이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수면 양말을 신은 발이 거실 이곳저곳을 쓸며 돌아다니다가 현관에 걸린 전신 거울 앞에 멈춰 섰다. 목 조르듯 손목을 감싸고 있는 보호대, 촌스러운 코르셋 같은 복대, 헐렁하게 무릎이 나온 수면 바지까지. 내 몸을 두르고 있는 이 여러 보호 장비가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간단명료하게 보여줬다. 그렇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마치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일순간 단두대에서 머리가 댕강 잘려 나간 죄수 같았다.  

    냉장고에서 젖병을 꺼내어 워머에 집어넣었다. 

    으아앙! 으앙, 으앙! 

    워머가 나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네, 하며 굵은 땀을 흘렸다. 그런다고 초이가 사정을 봐줄리 없지만 말이다. 초이는 엄지를 손바닥 가운데에 집어넣은 채 두 주먹을 꼭 쥐고, 자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성량을 뽑아냈다.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엔 땀구멍마다 작은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만 좀 울어! 다른 집에서 신고 들어온단 말야! 

    아, 이 방법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깜빡했다. 높아진 내 목소리 뒤로 초이의 울음소리가 단번에 솔에서 시로 올라갔다. 젖병이 데워지는 시간은 마치 한 세기가 바뀔 만큼 길게 느껴졌다. 인내심이 없는 나도 아닌데 이 시간만큼은 매번 내 한계가 실험대 위에 오른다. 

    으앙!! 으으으아아앙!! 

    이것도 아니란 거니? 그럼 도대체 뭔데?! 뭐가 문제야?! 진짜 돌아버리겠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었던 난 금세 실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초이는 젖꼭지를 혀로 밀어내며 목과 허리를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크게 뒤로 젖혀 누웠다. 힘이 빠진 팔이 그런 초이를 거실 맨바닥에 던지듯 눕혔다. 초이가 뒤집어진 거북이 마냥 온몸을 버둥대며 이젠 아예 쇳소리 섞인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으아아... 내 안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끓어오른다. 

    난 도대체 얼마나 못 잔 거지, 제대로 맘 편히 자 본 것이 언제였지? 불 꺼진 방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돈 아낀다고 산후조리원에서도 일주일 만에 퇴소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젖몸살에, 회음부 통증에 산후 부종까지. 그저 급한 불만 겨우 껐을 뿐이었다. 

    네,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주의할게요. 

    드디어 옆집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저번에 보니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 같던데. 갑자기 눈에 벌건 불이 켜진다. 

    너희는 다를 것 같니? 나중에 다 겪게 될 일인데. 기대해. 그때가 되면 이 설움을 똑같이 갚아줄 테니. 

    머리 위로 사악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손톱이 마른 뿌리처럼 길게 자라는 것만 같다. 

    으앙! 으앙! 으아아아앙!!

    인터폰 화면을 무섭게 응시하고 있는 내 등에 초이의 칼날 같은 울음소리가 날아와 꽂힌다. 그래, 그땐 그때고 지금은 초이의 울음을 어떻게든 멈춰야 한다. 공갈 젖꼭지?  실패. 조용한 음악? 실패. 안고 거실 백 바퀴 돌기? 실패. 자장가 불러주기?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실패. 손목과 허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손목 보호대와 복대는 무슨 용도로 하는건가 싶다.

    다시 휴대전화를 들어 통화 버튼을 길게 눌렀다. 아빠 요양병원에서 잠들어 있을 엄마에게였다. 전화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조용히 가물거렸다. 깊게 주무시다가 깬 듯했다. 이 밤에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엄마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밥 한 덩이를 억지로 구겨 넣은 것처럼 목구멍이 콱 막혀왔다. 

    엄마, 초이가... 초이가 계속 울어. 뭘 해도 멈추질 않아.

    입술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겨우 내뱉은 말에 엄마가 뭔지 알겠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 응, 기저귀도 봤지... 줘도 안 먹으려고 해... 안 그래도 덥나 해서 일부러 온도도 낮췄어... 좀 많이 울어서 몸이 더워진 것 같긴 한데 아파서 열나는 건 아닌 것 같아. 

    엄마는 아침 일찍 요양사가 오는 대로 우리 집에 들르겠다 하곤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려놓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내 몸과 정신이 아무런 가치 없는 한 줌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내 울음소리는 초이의 것보다 훨씬 더 커졌다. 한참을 그렇게 초이와 난 서로 경쟁하듯 끌어안고 울었다. 

    으아악! 제발 그만 좀 울어! 그만 좀 울라고! 정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세 시간이 더 흘렀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폭발하듯 소리 질렀다. 하지만 초이도 반항하듯 마지막 기운을 다해 힘차게 울어댔다. 그런데 안고 있던 초이의 둥그런 머리 뒤로 발코니의 큰 창문이 보였다. 뻥 뚫린 공중이 내 고통을 다 받아줄 것처럼 큰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 등을 떠밀듯 초이를 안고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수면 양말이 바닥을 쓸며 건조한 소리를 냈다. 

    던져버릴까? 이 끔찍한 소리를 인제 그만 듣고 싶어. 

    난 검은 화면 앞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창문을 열자마자 내 몸을 강하게 밀어내는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이도 놀랐는지 잠시 울음을 멈췄다. 미명의 푸른 빛이 눈치를 보며 슬며시 우리 집 거실로 깔려 들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초이가 지쳤는지 맨바닥에 이불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밤새 서로 마구 찔러댔던 날카로운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발코니 밖 새소리마저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선배는 시간이 많이 늦어 찜질방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티브이를 틀고 식탁 위에 있던 컵에 물을 따랐다. 그런데 그때, 낯설지 않은 소식이 브라운관을 타고 전해졌다.  

    오늘 새벽 한 시 삼십 분 경 대구의 한 빌라에서 이십 대 여성이 자신의 사 개월 난 아들을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여성은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기가 밤새 너무 울어서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난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밤 내가 초이를 창밖으로 던지지 않았던 건 신의 큰 은총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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