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너에겐 그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안 먹였다고 생각하니?
* 다시, 반유니
집에서 나를 데리고 나온 아빠는 엄청난 속도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난 아빠가 어디로든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상벨 같은 전화벨이 울렸다. 그 소리는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온 차안에 크게 퍼져갔다. 엄마였다. 아빠는 거치대에 놓인 휴대전화를 무섭게 째려봤다. 백미러로 보이는 아빠의 눈에선 전에 보지 못한 붉은 빛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한번 전화가 끊어지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을 때 아빠는 뭔가 결심한 듯 핸들에 달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가 먼저 입을 뗐다.
“수인 씨,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당장 돌아와.”
“당신이야 말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니지, 그동안 나와 유니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 짓이라니? 갑자기 애 데리고 가출하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맹지혜!”
“왜? 아보카도 샌드위치 때문에 그래? 수인 씨, 난 그냥 당신을 잘 돌봤던 것 뿐이야.”
“뭐? 십오 년동안 썩은 아보카도를 먹여놓고, 날 잘 돌봤다고? 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거야?”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져갔다. 눈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하지만 아빠는 멈추지 않고 사거리를 그냥 넘어갔다. 차 두 대가 우리를 보더니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창밖으로 가로수와 건물들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아빠... 무서워요... 차가 너,너무 빨라요.”
아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무섭다. 아빠에게 아보카도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을 후회했다. 나만 조용히 입 다물었다면 우리 가족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난 그저 아빠가 더는 썩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레처럼 매일 천국의 맛을 맛봤으면 좋겠고, 날지 못하는 나비가 다시 날았으면 좋겠고, 향초를 켜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 썩은 내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정말 그뿐이었다.
나비가 향초에 절반쯤 몸을 담그고 굳어 있었다. 입술을 모아 살살 불어봤다. 나비의 가는 다리와 박히지 않은 날개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었다. 난 향초를 들고 엄마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것을 엄마의 화장대 위에 올려놨다.
몇 시간 후 엄마가 내 방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왔다. 연필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반유니, 네가 갖다놨니? 이 향초.”
난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뜻이야?”
“무,무슨... 뜻이...라뇨?”
“그 향초를 왜 내 화장대에 갖다놨냐고.”
엄마의 눈이 내 얼굴을 훑는 게 느껴졌다.
“그 나비... 어,엄마가 그런 거잖아요.”
분명 아주 잠깐이지만 엄마의 시간이 멈췄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는 양팔을 가슴팍에 꼬아 넣으며 내게 말했다.
“너... 알고 있는 거지? 괜찮아. 사실 나도 네가 알고 있단 걸 오래전에 눈치채긴 했다만.”
난 다시 고개만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왜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어?”
“아빠가... 불쌍해서요. 아빠가 이걸 알게 되면 얼마나 슬퍼할지 잘 아니까요.”
“그럼 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엄마 쪽으로 돌아갔다.
“내가 왜 너에겐 그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안 먹였다고 생각하니?”
“그건...”
내가 잠시 망설이자 엄마가 비스듬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네가 나를 닮았기 때문이야. 넌 애초부터 내 의도를 알고 있었어. 그래서 길들일 필요가 없었지. 하지만 아빤 달라. 끊임없이 엄마가 정성을 쏟고 길들이지 않으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건 가짜예요.”
“그래, 자연스러운 가짜지. 그게 진리야. 세상에 진짜는 없어. 다들 진짜인 척 하는 거지. 네가 나에게 엄마가 한 짓을 보란 듯이 향초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너의 의도를 그렇게 담아 보내고도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날 속여 왔잖아. 안 그래? 결국 넌 방관자야.”
“나,난! 힘이 없으니까요. 엄마를 막을 힘이... 내겐 없으니까요.”
내가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뒤에서 초능력을 더해주고 있는 것처럼 마구 용기가 났다.
“대단하네, 우리 딸. 그래, 그렇게 살아.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말고, 네 뜻대로 길들이며 살라고. 그 사이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망설이다간 발목 잡혀서 이 나비처럼 죽는 거야. 명심해.”
엄마는 특별히 마지막을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향초를 내던졌다. 깨어진 유리조각이 폭탄 터지듯 방바닥에 흩어졌다.
어쩌면 그날 난 영원히 장미꽃으로 성장을 멈춘 걸지도 모르겠다.
차안을 울리는 엄마 목소리가 좀 변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는 벌의 날개가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나는 소리처럼 가늘지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어쩌고 싶은 거냐고. 난 수인 씨를 내 곁에 영원히 두고 싶었고, 그래서 길들였던 것 뿐이야.”
“날 길들여? 평생 당신에게 속은 내 이 배신감은! 하아... 진짜 어이가 없네... 그래, 이유나 들어보자. 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건데?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빠가 두번째 빨간 신호등을 그냥 지나쳤다. 차들이 또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서는 게 보였다. 무섭다. 난 있는 힘을 다해 안전벨트를 꼭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
“진짜 궁금해? 후회할텐데...”
“후회? 그건 이미 하고 있는 거고. 자꾸 말돌리지 말고 당장 말해, 말하라고!”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한계에 다다른 듯 부들부들 떨리는 게 다 느껴질 정도였다. 눈물이 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차가 떠는 건지 내가 떠는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 떨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예전에 말이야... 내가 중국에 갔던 적이 있었거든. 그때, 통역을 해 준 누군가가 내게 그러더라. 죽지 말라고... 내가 꼭 그럴 것 같다고.”
순간 차의 떨림이 멈췄다. 그리고 차가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부드럽게 앞으로 쭉 나아갔다.
“그래서... 아, 이사람은 진짜를 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진짜 내 모습을 봐 주는 사람이구나 했는데... 아니더라고. 진짜 나를 못 알아보더라고. 자연스러운 가짜에 속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그럼 호,혹시 그...”
엄마는 목이 맨 듯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아빠 목소리의 분위기도 변했다. 왜일까. 왜 그 목소리에선 깊은 후회가 느껴지는 걸까.
“그 남자, 비염이 심해서 냄새를 잘 맡을 수 없다고 했지, 아마. 그 점이 좋다고 했었는데... 아니었나 봐, 수인 씨?”
아빠가 가속 페달에서 서서히 발을 뗐다. 차안이 고요해졌다. 엄마도 아빠도 그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아빠의 차는 공중을 나는 것처럼 세번째 빨간 신호등도 무시한 채, 도로 위로 빠르게 미끄러져 갔다.
사실 아빠에게 못한 말이 있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엄마는 항상 아빠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냄새를 맡곤 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 좋은 냄새야. 살아있는 냄새. 그때도 수인 씨에게서 이런 냄새가 났었는데... 내게 죽지 말라고 할 때 말이야.”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다 길들여진 여우는 지구별에 홀로 버려졌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가 길들이려 했지만 계속 가시를 드러냈다. 가시를 드러내지 않고 길들여지기만 하면 언젠가 버려질 거란 걸 알았던 걸까. 그런 장미꽃이 어린 왕자는 불편할 정도로 신경 쓰였을 것이다.
책을 여러번 읽어도 답을 모르겠다. 어린 왕자는 결국 죽음을 통해 자기 별, 소행성 B612로 돌아갔을까. 길들이는 법을 터득한 어린 왕자, 길들여지길 거부한 장미꽃, 길들여진 여우. 그들 중 누가 가장 행복했고, 누가 가장 불행했을까. 난 여전히 그것이 궁금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