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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Dec 19. 2023

모서리에 앉아서

혹시 이런 좁은 시각으로 살아가는 동안 마음마저 편협해진 건 아닐까.

    모서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그곳에 있던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원래 방 안에 있던 걸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거실에 내다 놓았다. 그런데 제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소파를 보니 그저 한번 앉아보고 싶었다. 그것을 꽃무늬가 과하고 색도 화려해 앉기보다는 늘 바라보기만 했던 소파였다. 하지만 막상 앉아보니 다소 엉덩이도 딱딱하고 등받이가 직각으로 세워져 있어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데 은연히 그것 말고도 왠지 모를 불편함과 낯선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달라진 나의 시각. 수년을 이 집에 살며 익숙해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항상 긴 소파가 높인 벽면에 앉거나 건너편 피아노 의자에 앉거나 또 다른 모서리에 놓인 마사지 의자에 앉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전혀 앉아 보지 못했던 모서리에 앉아있다. 

    좌식 생활에선 바닥이라면 아무 데나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45도, 90도 혹은 127도 같은 애매한 각도에서조차 배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무릎을 꿇거나 드러눕는다면 위아래 각도 조절도 가능했다. 어느 각도에서도 낯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요즘 난 앉는 곳이 늘 정해져 있다. 거실 소파, 식탁 의자, 마사지 의자, 피아노 의자, 책상 의자 정도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시각의 한계선을 제멋대로 그어 버린다. 의자가 놓인 곳이 어디냐에 따라 내가 볼 수 있는 배경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짧은 한숨, 가로 젓는 고개, 한심하다는 듯 멀리 가져가는 눈빛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를 더 추가해 내뱉는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보는 세상은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엄마의 손거스러미도 그랬다.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의 손끝엔 말린 북어포처럼 가시 같은 게 돋았다. 워낙 건조한 손이 히터의 훈풍과 만나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마른 땅처럼 일부가 갈라지고 벗겨져 피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약을 바르라는 둥, 반창고를 붙이면 되지 않냐는 둥 늘 바른 소리만 던지던 나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손끝에도 손거스러미가 돋았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잘 낫진 않고 반창고를 붙여도 손끝이라 그런지 잘 붙어 있지도 않아 금세 떨어져 버렸다. 그뿐이랴. 잠잘 땐 이불에 거스러미가 스치기만 해도 악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드디어 나도 엄마의 모서리에 앉은 것이다.

    이제 나는 긴 한숨, 끄덕이는 고개, 깨달았다는 듯 내리까는 눈빛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를 더 추가해 내뱉는다. 이젠 이해가 되네. 

    혹시 이런 좁은 시각으로 살아가는 동안 마음마저 편협해진 건 아닐까. 무릎을 구부렸다. 큰아이 키로 걸어봤다. 벽에 걸린 거울에 얼굴이 반쯤 잘려 보였다. 무릎을 더 구부렸다. 둘째 아이 키로도 걸어봤다. 책꽂이 맨 위 칸에 무슨 책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예 무릎을 바닥에 대고 걸어봤다. 막내 아이의 시선에 맞추자 소파 팔걸이 사이에 끼어 있는 볼펜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며 나도 분명 봤을 그 세상이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다. 그래서 이해보다 언성을 먼저 높이게 된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만 보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만을 믿기 때문이다. 

    자폐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오감을 예민하게 건드려 두려움을 주는 세상이다. 크게 다가오는 화면, 확성된 소리, 자극적인 냄새. 그래서 그들은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젓는다. 조현증 환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 것이 난센스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모두 진실이 아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멀쩡한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거짓된 세상이 그들에겐 모두 진실이 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있을까. 또한 타인의 눈으로 본다면 얼마나 다른 세상이 보일까. 그래서 그들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거실을 둘러본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았던 긴 소파의 왼쪽 면이 아주 잘 보인다. 벽난로 뒤에 숨어 있던 선인장도 내가 물을 주지 않아 말라 죽어가고 있다.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평소와는 다른 방향에서 본다. 그리고 어깨가 축 처져 들어온 아이에게 어깨 좀 펴라 잔소리를 하려다 잠시 멈춘다. 이젠 나의 모서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의 모서리에 한번 앉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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