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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Dec 26. 2023

크리스마스트리를 아시나요?

당신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무엇인가요?

    채 자라지 못한 초록 세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서너 살 아이만 한 것은 앞줄에,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것은 뒷줄에 모두 키순으로 열 맞춰 있다. 마치 아침 조회하러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 같다. 그들은 자신이 가을까지 부지런히 자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초록 세모들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을까. 온몸에 알록달록 작은 전구들을 두르고, 가지각색 화려한 장식을 달고, 머리 위엔 빛나는 메시아의 별을 얹은 자신들의 모습을 과연 상상할 수 있을는지. 그런데 어쩌면 저들 중 몇은 남다른 크리스마스트리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가지마다 가로, 세로도 아닌 빗금을 그으며 궁금증이 뾰족한 잎을 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아시나요? 

    석유 시추 기사에게 크리스마스트리란 생산 중인 유정의 윗부분에 있는 채유량 조절 장치다. 그것은 반짝이는 전구나 화려한 장식 대신 압력계와 각종 밸브, 파이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역할의 중요도로 따진다면 별 다섯 개를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아시나요?

    볼링 선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볼링 용어로 크리스마스트리란 2, 7, 10번 혹은 3, 7, 10번 핀만 남은 스플릿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핀들이 삼각형 구조로 흩어져 있어서 스페어 처리가 매우 힘들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난다면 그 결과를 실력보단 운에 맡겨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아시나요?

    자동차 정비사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출발 신호를 하는 전기식 표시등을 말한다.  그리고 투자 관리사에겐 옵션의 매도거래수가 매수거래수보다 크며, 매도되는 옵션이 두 개 이상의 상이한 행사가격을 가지는 경우를 뜻한다.

    질문을 바꿔본다. 당신이 이해하는 것과 내가 이해하는 것은 같습니까?

    언젠가 ‘이과와 문과의 차이’라는 유머를 읽은 적이 있다. 이과 출신인 나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일까 내심 기대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 역시 이과 쪽에 줄 서 있는 단어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염소는 화학원소17번, LiFe는 철화리튬,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와 같은 식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비교하기 위해 문과 쪽에 줄 서 있는 단어들을 봤다. 거기엔 ‘염소는 음메 하고 우는 동물, LiFe는 삶,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몇 가지 단어조차도 얼마나 다른 시각, 생각 차이를 보이는지. 이과생과 문과생의 두뇌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증거를 들이미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머리가 가로, 세로도 아닌 빗금을 그으며 기울어진다. 

    우리는 늘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은 어쩌면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오직 자신의 입장에 비추어 타인을 보기 때문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나라는 거울을 통하여 상대방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배경, 환경, 경험이 만들어낸 질기고 두꺼운 옷을 입는다. 그것은 좀처럼 쉬이 찢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입은 사람에게 자기 방어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다만 자신의 이기가 타인의 경계석을 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릴 거란 생각 또한 편견이지 않을까. ‘염소’라고 했을 때, 모두 동물인 염소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남다른 시각의 사각지대는 반드시 생기는 법이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사는 우물 안에서 올려다본 한 평짜리 하늘을 믿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수많은 발명품이 나오고, 다양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때론 다른 사람의 크리스마스트리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생각의 지경을 넓히는 놀라운 방법이다. 그들의 거울에 나를 비춰 보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차창 밖으로 드디어 초록 세모가 만든 줄의 끝이 보인다. 저마다 남다른 크리스마스트리를 꿈꾸며 뾰족한 잎들을 사선으로 내고 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 바람을 타고 또 하나의 물음표가 날아든다. 

    당신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무엇인가요?     

    머리가 다시 가로, 세로도 아닌 빗금을 그으며 기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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