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dbury Feb 05. 2024

위장된 크라임씬

제발 시도하지 마라. 다 너보다 똑똑하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많다. 셀 수 없이 많다. 독살, 교살, 총살, 타살 등과 함께 학살, 청부살인까지 포함한다면 살인자에겐 무한한 선택지가 있는 셈이다. 

  유명 취재 탐사 프로그램의 지난 회차들을 몰아봤다. 사회, 종교 쪽도 다루긴 하지만 미제사건, 특히 살인사건이 많았다. 담당 피디들은 사명감으로 무장해 용의자들과 인터뷰하고, 실제 상황을 가상 실험해 본다. 뿐인가, 프로파일러나 비디오 판독 전문가, 부검의 등의 의견을 모으며 시청자들을 쉴 새 없이 사건 속으로 빨아들인다. 

  수법이 악랄한 만큼 범죄 현장은 매우 끔찍하다. 피로 얼룩진 벽과 바닥, 발견된 사체의 훼손 정도, 때론 늦게 발견될 경우, 부패 악취와 자연 섭리로 몰려든 벌레들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 뒤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는 결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한다. 상상은 실제보다 부피와 질량이 크기 때문이다. 

  우발적 살인이 외적 폭발로 인한 감정 탓에 더 잔인할 것 같지만 계획 살인은 내적 폭발이 일어나듯 치밀하면서도파괴력이 크다. 그래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 찾기가 더 어렵다.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위장한다.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장갑을 끼거나 자신의 지문이 묻었을 만한 모든 곳을 닦는다. 알리바이를 준비하는 건 기본이고, 범행 시간에 혼선을 주기 위해 온도를 높이거나 낮춘다. 아예 사체를 찾지 못할 곳에 숨기기도 한다. 물증이 없다면 유죄로 판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제사건이 존재한다는 건 완전 범죄가 가능하단 뜻일까. 안타깝게도 과학과 범죄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그 위장된 살해 현장의 진실을 풀 수 있는 최신식 열쇠를 거머쥐게 되었다. 풀리지 않던 옛 사건의 아주 작은 단서라도 하나 보관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피부세포, 체모, 핏자국, 타액 등으로 DNA를 채취할 수 있고, 컴퓨터로 범죄 현장을 가상 실험할 수 있으며 심지어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범죄 예측까지 가능해졌다. 

한 프로파일러는 이렇게 경고한다. 

  “제발 시도하지 마라. 다 너보다 똑똑하다.”

  그 말에 안도하긴 이르다. 성경은 말한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살인은 실제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 이전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마저 포함한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은 이유는 그보다 더 많다. 의견 불일치, 질투, 배신, 돈, 이성 문제 등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특히 더하다. 그렇다면 내가 살인자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외적으로 보이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고, 난 내적 폭발로 보이지 않는 살인을 저지른 것일 뿐, 또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릴 적 동생을 심하게 때린 적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였다. 자꾸 티브이 채널을 바꾸는 동생에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했고, 그 말을 듣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잠깐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건너뛰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내 발밑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는 동생을 봐야만 했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줬다.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면, 주위에 위험한 물건이라도 있었더라면 난 그날 가인(Cain)의 전철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 말은 흔히 정신을 잃다, 이성을 잃다, 돌아버리다, 꼭지가 돌다, 같은 표현으로도 쓴다.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비정상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까지 이어져 버렸다는 뜻이다. 살인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나를 누르고 미워하는 마음에 완전히 잠식당할 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몇몇 악의적인 살인, 자신의 즐거움을 좇아 저지르는 살인은 제외한다.     

  내가 위장한 크라임씬은 몇 가지나 될까.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열심히 지문을 지우고, 피를 닦고, 핑계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진 않았는지. 내 손에 죽어간 무수한 사람의 얼굴을 다 기억할 순 있는지. 혹 너무 많은 살인을 저질러서 이젠 양심이 무뎌진 건 아닐는지. 난 얼마나 다양한 이유를 들어 그들을 교살하고 독살하고 총살하고 타살했을까. 완전 범죄를 꿈꾸며 살해 현장을 벗어나는 내 뒷모습은 어딘가 많이 불안해 보인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결국 위장된 크라임씬의 진실은 드러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단서 하나가 스모킹 건이 되어 살인을 증명하고, 유죄를 판결받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려 하자 그 프로파일러의 말이 내 마음의 살인 충동을 막아선다. 

  “제발 시도하지 마라. 다 너보다 똑똑하다.”     



작가의 이전글 간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