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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Mar 12. 2024

비 내리는 프라이팬

동병상련이란 말은 비슷한 소리의 끌림 현상이 아닐까.

    비가 내린다. 하얗고 둥근 몸이 테두리에서부터 노랗고 바삭하게 익어간다. 그 안에서 오징어와 홍합, 새우가 쪽파를 침대 삼아 가지런히 누워 있다. 잠시 후 몸을 뒤집어 배를 깔고 눕는다. 그러자 더 거세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번져간다. 그렇게 한참을 장맛비가 쏟아지다 서서히 잦아들면 그것은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널따란 접시 위로 내려 눕는다. 그 농염한 자태에 모두 군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누군가 외친다. 비 오는 날엔 역시 부침개지! 

    비 오는 날엔 꼭 부침개를 먹어야 한다는 이 말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설은 비가 오면 떨어지는 체온을 올리기 위해 기름기 많은 부침개를 먹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멜라토닌이 떨어지면 우울해지는데 이때 탄수화물인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설이 있다. 비슷한 소리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소리가 있다. 열대야에 몸부림치는 밤이었다. 그날도 매년 찾아오는 납량특집 영화를 한 편 보고 침대에 누웠다.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세면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가구가 습기에 팽창하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공포 영화의 효과음처럼 어두운 방안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하지만 이 정도는 견딜만했다. 그런데 그때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이한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기가 칭얼대며 우는 소리.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소리는 함께 들리지 않았다. 텅 빈 아파트 단지에 메아리쳐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손가락 발가락이 다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를 툭 하고 내뱉었다.  고양이 짝짓기 철인가?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양이는 이 소리를 이용해 주인에게 음식을 받아내거나 자신을 더 정성껏 돌봐주도록 조종한단다. 즉 인간의 무의식은 고양이 소리를 들으면 아기가 칭얼대며 우는 소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고 아기를 돌보듯 고양이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소리의 끌어당김 현상은 단순한 착각일까.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판단의 오류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소리가 주는 놀라운 상상력일까. 북소리에 마음을 뺏기는 이유는 심장 소리와 닮아서이고, 같은 이유로 갓난아기는 진공청소기 소리에 잠을 더 잘 잔다고 한다.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비슷한 소리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공기업을 은퇴하고 비정규직 일을 하게 되며 J 씨가 갖게 된 이름은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그는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부당 사례들을 빼곡히 적어 책을 냈다. 그랬더니 이 소리에 여기저기서 비슷한 소리가 반응했다. ‘비정규직의 아픔’이란 소리 하나로 이십 대 청년부터 팔십 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끌려와 함께 소리쳤다. 

    동병상련이란 말은 비슷한 소리의 끌림 현상이 아닐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능력,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자선을 베푸는 손길,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치켜든 촛불. 그 비슷한 소리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따뜻하게 품어 안는 것은 아닐는지. 

    창밖에 쏟아지는 비가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프라이팬에서도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벌써 세 장째 부침개가 널따란 접시 위에 농염하게 누워 우리를 유혹한다. 온 세상이 부침개 부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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