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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Apr 30. 2024

하모니

나와는 다른 이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마치 계모 같았다. 딸의 밴드 콘서트에 전혀 기대감이 들지 않았다. 현악기의 능숙지 못해 끽끽 현을 긋는 소리도 듣기 힘들지만, 관악기의 픽픽 바람 빠지는 소리도 여간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고등학생 정도는 돼야 진심으로 손뼉 쳐 줄 만하다. 남들은 아이가 못 해도 그저 기특하고, 대견스럽다는데 너무나 객관적인 귀를 가진 탓일까. 난 의무감으로 강당에 들어섰다. 

  겨우 시간만 맞추어 들어가서인지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멀찌감치 않아 딸 뒤통수만 쳐다보게 됐다. 할머니는 손녀딸 뒤통수라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썼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 귀는 대충 열어두고 눈은 순서지에 가 있었다. 예상대로 학년마다 세 곡씩 그리고 마지막엔 재즈 밴드가 추가로 세 곡을 더 연주할 예정이었다. 첫 곡이 끝났을 때, 뒤에 앉은 미국인 아빠가 몇 개월 만에 저 정도로 맞추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곡이 끝나자 정말 아름다운 하모니라며 감탄했다. 

  그제야 순서지에서 눈을 들었다. 아이들이 앉은 뒤쪽 벽이 알록달록했다. 자세히 보니 학생들의 모국 국기였다. 내친김에 숫자를 세어봤다. 예순여덟 개의 국가와 관련된 학생들 이름이 적혀있었다. 미국에 살게 되면서 수많은 나라 사람을 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한국은 이제 겨우 다문화에 대한 정책을 내고 국민 인식을 바꿔 가려는 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답게 전 세계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첫 영어 교과서에서 인사말을 배울 때 ‘Where are you from?’이라는 문장을 배우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한국의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도 인사말을 가르치지만, 거기엔 이런 문장이 없다. 한국은 오래도록 한 민족을 강조하며 살아왔고, 그것이 주는 유대감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조화, 화합. 아이들 얼굴을 차례로 훑어봤다. 다양한 나라 분위기가 저마다의 얼굴 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모두 친구로 하모니를 이룬다. 

  8학년의 연주도 끝나가고 있었다. 지휘자는 낭만적인 밤을 만들어 주겠노라 너스레를 떨며 월트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주제곡을 연주했다. 처음으로 아이들 연주가 봄볕처럼 내려앉았다. 

  화음, 화성. 총 열세 개의 악기가 무엇하나 튀어 오르지 않고, 잘 배합되어 있다. 낮은 소리의 호른과 바리톤 색소폰이 뼈대를 만들어 주면 높은 소리의 플루트와 트럼펫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거기에 타악기가 청중의 마음을 두드리면 음악의 재미가 더해진다. 음도 제각각이다. 모든 악기는 같은 음을 내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음역에서 다른 음을 내고 있지만, 그것은 적절히 뭉쳐져 한 덩어리로 완성된다. 

  나와는 다른 이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 아이가 꼭 독주해야 하는 게 아니라 뾰족하게 튀어나오지 않고 공동체 안에 조화로이 스며드는 거다. 그 결과 처음엔 자기 소리만 낼 줄 알던 악기는 주위 소리에 점차 맞춰간다. 박자 역시 혼자 달려가지 않는다. 이기적인 소리가 서로를 배려하며 드디어 하모니를 이룬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위로가 되는 풍경이 있다. 잔잔한 바다 위, 해가 내려앉는다. 낮엔 분명 빨강과 파랑이 강렬히 맞서 있었건만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중이다. 둘 사이에 주황과 노랑도 끼어있다. 그 언저리엔 초록과 보라도 보인다. 그리고 창조주의 붓이 지나는 자리마다 이 모든 색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한다. 그 순간 산책하던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아직 서툰 아이들 연주에 이젠 손뼉을 치게 된다. 하모니를 배워가는 과정이므로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저마다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 속에서 딸이 엄마와 할머니를 부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오늘은 유달리 엄마! Harmony!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달려오는 딸을 보고 있자니,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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