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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20대 초중반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에도 나는 둘째 삼촌의 건물에 나의 명의가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점으로 기억해 보면, 2009년도 이후였던 것은 확실하다. 소희도 나의 명의가 삼촌의 건물에 매였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그 시절 내 입버릇은 종종 이거였다.


"돈이 없어."


실제로도 빠듯했다. 대학교를 다니며, 내가 일하는 분야로 취업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느라 공부도 해야 했고, 또 일도 다녔으니까. 거기다가 삼촌의 건물에 내 명의가 묶인 이후, 한동안은 나의 급여 전액을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보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희를 만나면 주로 밥은 내가 샀다. 그건 평소 큰 이모가 식당을 운영하며, 우리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무료로 먹게 해 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랬다.

소희와 만난다고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용돈을 주며, 소희랑 같이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도 소희와 만날 때마다 거의 내가 돈을 많이 냈다.

내가 언니니까. 외갓집 어른들이 계속 강조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소희의 발언들로 인해.


그날도 나는 언니와 외식을 나가던 중 소희에게 연락을 받아서 소희까지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집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당시 언니는 사법고시 준비 때문에 돈을 벌지 못했고, 소희는 소희대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할 기력이 없어서. 대부분을 밖에서 끼니를 때우고는 했다.


평소처럼 우리는 자주 가던 샤브샤브 식당에 갔고, 거기서 언니는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탄산음료를 즐기지 않았지만, 언니가 자주 주문을 했기 때문에 익숙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그런 우리를 보며 소희는 못마땅하다는 듯 한 마디 했다.


"나는 엄마가 식당에서 일해서 저런 게 원가가 얼마인지 알아. 그래서 밖에서는 절대 안 사 먹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당황했고, 언니는 불쾌해했다.

당시 소희는 큰 이모네 식당 일을 돕고 있었고, 그 후로 우리와 식사를 할 때마다 계속 실제 원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언니. 언니들이 맨날 이렇게 밖에서 사 먹으니까 돈이 없는 거야!"


그날도 나는 내 돈으로 언니와 소희를 데리고 저녁을 사주기 위해 외출 중이었고. 그런 우리에게 소희가 일침 했다. 하지만 일단은 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소희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언니가 폭발했다.


"야! 앞으로 우리 저녁 먹을 때 소희 연락 와도 오지 말라고 해! 그리고 올 거면 걔한테 더치페이하라고 해!"


분노에 찬 언니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그래서 소희에게 '앞으로 우리 더치페이 하자.'라고 전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마무리 될 줄 알았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긴 했던 것 같다.


소희는 매번 가족이나 친구들과 다툼이 잦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항상 들어주고 공감해 줬다.

때로는 소희보다 더 소희를 괴롭힌 사람들에 대해 미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 문제가 아닌 일로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소희에게는 자신의 그런 스트레스받는 일상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기꺼이 그 창구가 되어주었다.


다만, 문자나 전화로 듣는 건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듣는 것보다 더 지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희로 인하여. 그래서 나는 또 한창 나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뒷담 하는 소희의 말을 듣다가 제안했다.


"소희야. 그냥 만나서 얘기하자. 언니가 지금 나갈게."


그러나 역시는 역시였다.


"언니. 나 돈 없어서 언니 못 만나."

"뭐? 뭔 소리야?"

"언니가 앞으로 나한테도 돈 내라며. 근데 나 지금 돈 없어서 언니 못 만난다고."


나는 소희에게 집 근처 인근 공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였지만, 그녀는 명백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런 식으로 내가 자기에게 했던 말에 대한 원망을 하는 것이었다.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고, 결국 소희에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잠깐 공원에서 만나자고 말한 후, 만나서 그 말의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그 말을 한 건…."


그간 소희가 했던 행동에 대해 설명해 줬고, 소희는 이렇게 반응했다.


"아, 정말? 아 어떡해. 언니들 정말 기분 나빴겠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어. 네가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주아언니도 화났고."

"진짜 미안! 주아언니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 줘. 내가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 몰랐어. 진짜 미안."


평소처럼 소희는 사과했다. 다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진짜 미안해 언니…. 근데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기억이 안 난다고?"

"어. 나 좀 문제 있나 봐. 요즘 이상하게 내가 했던 말들이 기억이 안 나."

"…?"


소희는 평소에도 워낙 덤벙거렸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곧잘 이었다.

그래서 소희의 그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소희의 그런 실수나 잘못들은 사실 그녀의 심리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었다는 걸. 나나 외갓집 식구들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무의미한 아쉬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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