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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그날은 김장을 하기 위해 외갓집에 친척들이 모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외할머니의 김치는 무척 맛있었기 때문에 김장날이 되면 가족들은 모두 모여 김장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김치를 나눠 가져가고는 했다.


다만, 그날이 좀 더 특별했던 건 큰 이모 때문이었다.

큰 이모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의 식당에서 외할머니의 김장 김치로 다양한 음식을 하거나, 김치만 반찬으로 내놓기도 했다. 큰 이모 가게의 손님들의 호응은 좋았고, 큰 이모는 결국 폭탄 같은 발언을 했다.


'올해는 김장 천 포기를 하자. 내가 돈 써서 사람 보내고 할 테니까. 엄마는 그냥 지시만 하라고 해! 나는 식당에서 팔아야 해서 김치가 많이 필요하니까.'


결국 큰 이모가 정말로 사람을 많이 보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더는 없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이었으니까.






큰 이모의 폭탄선언에 대하여 외갓집 식구들의 불만이 많았다.

하필 외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고, 도저히 천 포기는 무리라고 모두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소희는 자신의 엄마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아서 미안하다며 자기가 꼭 김장을 도우러 가겠다고 나섰다.


소희는 평소 우리 가족들의 차를 함께 타고 외갓집에 다녔기 때문에 그날도 같았다. 우리 집 차를 타고 외갓집에 가기 위해 오후 4시 30분까지 소희가 우리 집에 오기로 한 것이다. 그 시기에 소희는 수능을 봤고, 수능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의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모든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갓집 김장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촌 동생들도 동원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내게 외할머니가 양념통닭을 좋아하니까 자기가 사서 가고 싶다며, 내게 양념통닭도 미리 사다 놓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한 마디로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과 소희를 기다리는 일, 그 외 외갓집 사촌 동생 한 명이 우리 집에 또 오기로 했다며, 그 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의 어머니는 수시로 내게 전화해서 '소희는 도착했냐', '가족들 다 도착했냐' 등등 그 상황을 점검했다. 한 마디로 내 개인적으로는 복잡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소희를 기다렸고, 그 와중에 치킨집이 5시부터 오픈을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나름 초조한 상황이었다. 우리 차가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너무 늦지 않나 싶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불안해했는지. 나의 부모가 내게 어떤 지시를 내렸을 때 그걸 제대로 완수해 내지 못하면 불안했던. 가여운 내면아이가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소희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계속 '알았어, 언니. 나 지금 갈게.', '어, 언니! 나 지금 빨리 가려고 택시 기다리고 있어!' 등등 자신이 가고 있다며 내게 말했다. 나는 처음 약속 시간에 한 번, 그리고 소희가 다시 몇 시까지 가겠다고 말한 시간에 한 번 전화했었다. 그럴 때마다 소희는 저렇게 답한 것이다.


그러다가 소희보다 먼저 다른 사촌 동생이 우리 집에 도착했고. 결국 마지막이라는 마음에 세 번째로 소희에게 전화했다. 분명 소희 말처럼 택시를 탔다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음에도. 예정된 도착시간 보다 20분이나 훌쩍 넘긴 채 소희가 오질 않았기 때문에.


"소희야. 너 어디야?"

"어, 언니! 나 지금 버스 안이야."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빨리 갈 거라고 말한 소희가 1시간 넘도록 말만 그렇게 하고 늦게 오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택시를 타고 오겠다던 아이가 내게 거짓말을 한 채 버스를 탔다는 상황도.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매번 그랬다. 그녀는 곧잘 나를 기다리게 만들거나 실수를 연발했고, 거짓말을 하다가 내게 들켜서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말하게 됐다.


"야아….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너가 택시 타고 온다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


순간 깜짝 놀랐다. 휴대폰 너머에서 소희의 목소리는 물론, 소희의 버스 안에 있던 소음까지 모두 잠재워 버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어떤 여자 아이가 내게 화를 내며 뭐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 소희야? 이거 무슨 소리야?"

"어쩌라고!"

"어, 어, 언니 미안! 나 금방 갈게! 끊어!"

"어쩌!"


뚝. 소희가 당황해서 급하게 전화기를 끊는 상황에서도 그 목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뚝 끊길 정도로.


"…?"


너무 놀라 당황한 나머지 전화기를 잠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소희가 정말로 들어왔는데.


"야, 너 택시 타고 오기로 해놓고…"

"뭐!!!!!"


내가 문을 열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소희가 덤벼왔다.

온몸을 밀어붙이며 내게 거센 고음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딴 식으로 계속 전화하면 어떡해!!!!!"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계속 전화했어!"

"했잖아!! 전화했잖아!! 미쳤냐! 기억도 못하냐!!!"

"뭐? 야!!"


우리 집에 먼저 도착해 있던 사촌 동생은 놀랐고, 소희는 내게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그렇게 나를 계속 벽으로 밀쳐가며, 난동을 피웠다.


"그딴 식으로 전화하면! 어!! 내 친구가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야말로 제정신이냐!! 그딴 식으로 계속 전화해 대게!!"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처럼. 깽판을 피우듯이 불 같이 화내던 소희.

어느새 집에 온 어머니와 언니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소희를 붙들었다.

내 몸이 뒤로 한 없이 밀리고 있었고, 소희는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야!! 임소희 그만해!! 멈춰!!"

"야, 임소희! 주아 언니랑 내 친구들이 다들 너랑 놀지 말라고 했어!"

"하! 나는 뭐 너랑 노는 거 좋았는 줄 알아!?"

"뭐? 너!? 내 주변에서 다들 네가 나한테 함부로 한다고 인연 끊으라고 했다고! 근데 너!"

"소희야 무슨 짓이야! 너 언니한테 뭐 하는 거야!"

"인연 끊어!! 인연 끊으면 되지! 끊으면 되잖아!!! 끊어어!!!!!"


먼저 소희의 몸을 붙들고 뜯어말리듯 한 건 언니였고, 그런 소희의 모습을 처음 본 어머니도 당황한 듯 합세했다. 두 사람이 붙어서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인 여성 두 명이 청소년인 여자 아이 하나를 말리는 게 쉽지 않아서 버벅댈 정도로 그녀의 분노는 맹렬했다.

그러다가 결국 언니가 어떻게든 소희를 나한테서 떨어지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소희 너 어쨌든 당장 나가! 우리 집에 다신 오지 마!"


언니에 의해 강제로 몸이 돌려진 와중에도 나를 노려보며 씩씩대던 소희.

그녀는 우리 집 문 밖으로 내보내질 때까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걸 멈추지 않았고, 그런 소희의 모습에 크게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충격을 받은 어머니의 반응.

평소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였으면 좋겠다며, 나에게는 함부로 굴어도 나의 부모에게는 만날 때마다 애교를 부리고 살갑게 굴던 소희였기에. 그녀의 충격은 꽤 큰 듯 보였다.


"무슨 애가 힘이. 와…! 진짜…!"


언니의 반응.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의 언니의 키는 170cm이 넘는다. 하지만 소희는 160cm 정도.

그 와중에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포로 몸에 떨려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기댄 채로 쓰러져 앉아 눈물만 흘릴 뿐.


"수아! 울지 마. 울 거 없어! 네가 언닌데 이런 걸로 울면 어떡해. 동생하나 어떻게 못해서 울면 다들 바보라고 생각해! 울지 마!"


언제나처럼 어머니의 말은 비수처럼 또 내게 와서 박혔다.

초등학교 때도 내가 또래 남자 애들에게 놀림을 받고 울면서 들어오면, 그때마다 '너는 왜 맨날 바보처럼 당하고 울기나 하냐.'라고 타박하던 어머니.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건 내가 눈물을 보이는 일이었으니까.

그날도 그녀는 나의 눈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충격이 모두에게 각인됐지만, 결국 그 피해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해야 했던 건 오롯이 나 혼자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 후 큰 이모부터 시작해서 나의 가족들까지. 그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기에.

소희가 그날 울며 큰 이모네 식당에 갔다며, 그날 곧바로 큰 이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수아야! 평소에 수아가 언니로서 우리 소희 잘 챙겨주고 그런 건 이모가 고마운데! 소희가 울면서 이모한테 오니까 이모 마음이 많이 안 좋네! 그래도 수아가 언니인데, 응!? 아무리 동생이 잘못했어도 잘 타이르고 용서해 주고 그랬어야지! 그치!?'

'예, 이모.'

'어! 이모 말 알아 들었지? 그니까 좀 수아 마음 좀 추스르고! 소희한테 전화해서 화해하고 그래! 알았지!'

'예, 이모.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어, 그래! 그럼 이모는 일해야 해서 바쁘니까! 끊을게!'


큰 이모는 내게 화를 냈고, 나에게 소희를 용서해 주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나는 잘못한 게 없었지만, 그녀가 나의 이모라는 이유만으로 사과해야 했다.

마치 내가 죄인인 것처럼.


그 후에도 소희의 기행은 10년 넘게 계속 됐다.

소희가 나의 가족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내 얘기를 했기 때문에.


'수아야, 너 소희 무시했어?'

'? 아니. 난 소희랑 만난 적도 없는데.'

'소희가 수아 언니가 길에서 자기 무시하고 지나갔다는데.'

'내가 무시하고 말게 뭐 있어. 이미 끝난 사이인데. 그리고 난 걔 길에서 본 적도 없어.'

'아무리 그래도 길에서 보면 인사 좀 하고 그래. 소희가 섭섭해하는 것 같더라.'

'엄마. 나는 이미 소희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때 이후로 그냥 끝난 관계인 거야. 엄마도 봤잖아.'

'….'


어머니는 틈만 나면 소희를 용서해 주라고 강요했고.


'소희가 아이스크림 사줬는데 네 것도 있어.'

'내 거? 왜?'

'이거 수아 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아니냐고 소희가 사줬는데. 너 먹을래?'

'아니, 됐어.'

'그래 그럼.'


언니는 드문드문 내가 소희와 다시 화해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리 동생이 그랬어도! 용서하고 그래야지! 그게 언니야!'


소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타 지역에 가서 일을 하느라 우리 가족하고 거의 주말에만 만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끔 집에 오면 내게 저렇게 말하며 꾸짖고는 했다. 소희에게 수아 언니도 잘 지내냐는 문자를 받았더라며.


그렇게 나의 가족들을 포함한 몇몇 외갓집 식구들은 모두 착각하고 있었다.

소희가 사촌 언니인 나를 그리워하고 다시 잘 지내고 싶어 한다고.

그리고 그게 왜 거짓인지. 그 후 그녀가 보여준 또 다른 행동들을 통해 나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했고, 이해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와 피가 섞이지 않은 친구나 타인들에게 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끝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단 하루도 외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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