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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나와 소희가 4살 차이가 나는 사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갓집 식구들이 계속해서 나와 그녀의 관계 회복을 은근히 강요했다는 것이다. 어떤 집안의 사촌들은 명절에나 마주치기 때문에 서로 인사만 건넨 게 고작인 경우도 있다던데. 왜 그렇게까지 그들이 나에게 소희를 용서하라고 강요했던 것일까.


어쨌든 김장 사건 이후로 나는 소희와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고, 내 가족들은 나의 눈치를 보는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녀와의 화해를 유도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녀와 화해하지 않은 게 가장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일화들 때문에.


"수아 너 뭐 싸이월드? 그런 데다가 뭐 글 썼어?"

"싸이월드? 가끔 쓰지. 왜?"

"너 거기서 소희한테 뭐라고 했어?"

"… 내가? 뭐? 나 걔한테 관심도 없어! 걔 이름 쓴 적도 없고!"

"소희가 큰 이모한테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던데. 네가 소희 욕하는 글 거기다 써놨다고."

"내가? 내가 최근에 쓴 거? 아닌데… 네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라고. 그렇게 썼는데. 근데 그거 딴 사람한테 한 거야. 걔 이름은 쓰지도 않았어!"

"어쨌든 소희가 오해할 수도 있잖아! 글 쓰는 거 조심 좀 해!"

"하… 엄마! 걔가 내 싸이월드를 계속 보는 게 이상한 거지!"

"걔는 너하고 다시 잘 지내고 싶다잖아! 네가 용서를 안 하니까 그렇지! 왜 애를 용서를 안 해! 애가 상처받는 다잖아!"

"…."


나의 어머니는 김장날 소희가 날 몰아붙이며 퍼부었던 그 모든 장면을 잊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밥을 먹던 중에도 갑자기 소희 얘기를 하며 나를 꾸짖었고.


"소희가 아프다더라."

"…."

"턱에 문제가 생겼다나 봐. 뼈가 뭐 마모된다던가. 무릎에도 문제가 생겼다던데."

"… 엄마 나 걔한테 관심 없어. 그니까 다른 사람하고 얘기해."

"너는 왜 그렇게 애가 독한 면이 있어? 하여튼 너희 정 씨들은 꼭 그러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좀 좋아? 너네 아빠랑 고모랑도 서로 맨날 싸우고 어쩌고. 엄마는 진짜 그런 건 살면서 시집와서 처음 봤어! 고모들이 다 큰 성인인데 서로 이년 저년 하면서 머리채 잡고 싸우고."

"…."

"넌 왜 닮아도 그런 걸 닮으려고 해? 그런 거 닮아봤자 뭐가 좋다고!"

"…."


내가 분명 소희와 나는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굳이 사이좋게 지내지 않아도 되는 게 맞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나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때로 저렇게 갑자기 욱해서 나에게 짜증 내며 뭐라고 할 때면, 나는 어머니의 말이 끝날 때까지 침묵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그녀는 계속 내게 소희를 용서하라고 하는 주장을 굽히지 않을 테니까. 나와 나의 친가에 대한 모욕까지 확장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나의 가족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수아. 너 또 길에서 소희 무시하고 지나갔어?"

"나는 걔 무시한 적 없어. 애초에 발견도 못했고."

"으휴. 진짜 언제까지 그러려고 그러니. 그러다 너네 친가 식구들 안 좋은 것만 닮으려고."

"친가에 대해서 무슨 욕처럼 말하지 마.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나랑 걔는 끝났어. 내가 먼저 걔를 본 적도 없고. 누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보긴 하더라. 그러면 걔가 거기 있긴 하더라!"

"뭐? 누가 널 죽일 듯이 노려봐?"

"소희. 엄마가 그렇게 불쌍하다고 하는 조카."

"?"

"그냥 길 가는데 어디서 살기가 느껴져. 그럼 그쪽을 보면 항상 걔가 있어. 진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서 있더라!"

"소희가 무슨... 걔는 너랑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수아언니 잘 지내냐고. 다시 잘 지내고 싶다고."

"…그럼 그냥 그렇게 믿어. 나 괴롭히지 말고."

"정수아!"

"아, 됐어."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소희가 너를 노려봐? 그럴 리가. 소희가 언니한테 그러면 안 되지. 근데 아빠는 상상이 안 간다. 소희는 맨날 이모부~ 하는데. 허허. 수아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그들에게 더 이상 나는 그들의 딸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소희에게 그렇게 당했음에도 그들은 언제나 나보다 사촌동생인 소희가 우선이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또다시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소희는 나에 대한 기이하리만치 이상한 집착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소희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희는 물론이지만 그 남동생인 시우하고도 곧잘 어울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우는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시우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교류가 꽤 줄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째 삼촌의 사업 문제 때문에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얽히면서 외가 사촌들하고의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와 같은 항렬의 사촌들 중 내 명의가 둘째 삼촌의 건물에 매였다는 걸 아는 건 나의 언니와 소희뿐이었다. 하지만 둘째 삼촌의 사업에 다른 이모들과 막내삼촌까지 모두 얽히면서 둘째 삼촌과의 갈등이 잦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항렬의 사촌들 사이에서도 결국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우는 나와 비슷한 피해자였다.

큰 이모가 둘째 삼촌에게 빌려준 돈 문제로 특히 갈등이 잦아지면서 아직 어렸던 시우를 불러서 중재자를 시키거나 그 외 여러 문제에 계속 시우를 끌고 다녔기 때문에. 시우 또한 너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불필요한 갈등을 계속해서 목격해야 했다. 소희는 나보다 4살이 어렸고, 시우는 6살이 어렸는데. 소희의 상태는 누가 봐도 심각하게 불안정했기 때문에 큰 이모와 큰 이모부는 상대적으로 시우에게 더 의지했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집안에서 가족희생양의 위치에 있었던 것처럼, 시우는 큰 이모네의 가족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상담을 받으며 어느 정도 심리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그렇게까지 부적응적이거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우는 달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시우의 영혼은 너무 많이 갉아먹히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건 내가 이미 30대 초중반 즈음이 되었을 때이다.


"어? 시우야!"

"어? 어, 어, 어. 누나! 어, 수아 누나네. 응, 응."

"…? 너 어디가? 집 여기 아니야?"

"어? 어, 어, 응. 누나 아직 모르는구나. 나 지금 집 나온 지 좀 됐어! 저쪽에서 따로 자취해."

"… 시우야. 근데 너 손을 왜 그렇게 떨어…."

"어? 어, 어. 이것도 좀 됐어. 가끔 이러는데. 하, 하하."


길을 가다가 오랜만에 마주친 나의 사촌 남동생 시우는 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나중에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건 불안장애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명확하게 진단을 받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 그 진단명을 적기는 조심스러운 것 같다.


그 후 나는 시우와 서로의 휴대폰 번호가 그대로인지 확인했고, 얼마 안 가 따로 시우를 만났다.

어느새 성인이 된 나와 시우는 어렸을 때와 달리 술 한 잔을 같이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고. 서로가 그러한 세월을 신기해하며 나름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내가 모르고 있던 시간 속에서 시우 또한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또 나는 못내 가슴이 아파서 내가 가족들과 따로 나와 타 지역에 살게 됐음에도 별도의 시간을 내서 시우를 만나러 고향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시우는 아직 고향 동네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시우는 서로 소희의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소희에게 우리가 만났다는 걸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안이했던 것 같다. 나와 시우가 문제 아니라, 진짜 문제는 언제나 내 가장 가까이에 존재했는데.


"수아 너 어디가?"

"어? 아, 나 시우… 아. 언니, 절대 말하지 마. 엄마한테도 아무한테도. 나 시우 만나러 가."

"시우 만나는 게 왜 비밀인데?"

"어쨌든. 나 갔다 올게!"


늦은 시간, 그날도 나는 시우와 한 잔 하기 위해 본가를 나섰고. 그걸 본 나의 언니의 태도에 문제의 낌새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녀가 나의 말을 들을 리가 없는데.


"누나 혹시 이모나 주아 누나한테 우리 만난 거 얘기했어?"

"어? 아, 아아. 너 만나러 나올 때. 실수로 대답했어. 왜?"

"아, 아니야. 우리 누나가 누나랑 나 만나는 거 알게 됐는데. 누나가 우리 누나한테 연락할 일은 없으니까."

"아, 미안. 우리 언니가 전했나 보다. 내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아 누나가 비밀을 지킬 리가 없지."

"… 그건 그래."


시우가 나의 언니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의 언니의 성격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시우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제가 그렇게 지나갈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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