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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언니.

―?

―안녕. 나야.

―누구세요?


얼마 후, 밤 11시를 넘은 시각. 갑자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왔다. 이름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최근에 내가 실습을 지도했던 대학생 하고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순간 그 대학생의 카카오톡 이름을 찾아서 봤지만, 그 대학생의 카카오톡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혹시 그 대학생이 술에 취해서 실수했나 고민했던 걸 접었다.


―나 민주.


민주라는 이름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처음 보는 '민주'라는 이름만 있는 사람이 왜 계속 내게 반말을 하고 언니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카카오톡 개인 메시지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부르르르.


보이스톡으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진동과 함께. 민주라는 사람으로부터.

너무 늦은 시간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오는 전화가 기이하리만치 이상했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도 나에게 친근하게 카톡을 했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과 호기심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 나 민주."

"누구세요…?"

"나 민주라고 민주. 소희!"

"아…!"


언젠가 지나가듯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소희가 개명했다고. 이름 때문에 팔자가 사나운 것 같다며.

다만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개명했다는 사실도 망각했지만, 그 개명한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친동생도 아닌 인연을 단절한 사촌 동생의 이름까지 기억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연락하지 마. 끊을게."


내가 느끼기에 그 사촌 동생은 여전히 내게 무례했고, 나는 그녀의 무례를 더 이상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4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자기보다 4살이나 많은 사촌 언니에게 하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리만큼 무례했으니까.

무엇보다 소름이 끼친다고 느꼈다. 10년도 전에 이미 인연을 끊는다고 선언한 후 말 한마디조차 섞은 적이 없는데. 중간에 내 전화번호도 바꿨고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시우하고는 왜 만나냐!!"

"뭐?"

"나는 안 만나면서 시우는 왜 만나냐고!!"

"하…."


어이가 없어서 기가 차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심지어 갑자기 자신의 화를 가득 담아 버럭하고 소리쳤다. 그 밤 중에.


"나랑 시우랑 만나는 건 너하고는 관계없어. 끊어."

"만나지 마!!!"

"뭐?"

"만나지 말라고!! 시우는 내 동생이야!! 언니가 뭔데 허락 없이 내 동생을 만나!!"

"…."

"나는 안 만나면서 시우는 왜 만나는데! 시우 내 동생이야!! 그러니까 만나지 마! 만나기만 해 봐!!"

"…."


휴대폰 밖으로까지 퍼져 나올 정도로 그녀의 고함 소리는 너무 컸다.

자기 방에 있던 언니가 뛰어나올 정도로. 그녀의 협박이 조용했던 우리 집 거실에 울렸다.


"왜? 뭔데? 소희야??"

"…."


언니는 정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그 사촌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당황해했다.

나는 언니를 바라보며, '그러길래 왜 얘한테 나랑 시우가 만나는 걸 말을 해서는.'이라는 말을 꾹 눌러 담았다.

소희도 언니도 둘 다 어차피 자기들이 잘못했을 거라고 응당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니까.


"끊어."

"시우 만나지!!(-뚝-)"


그렇게 단호하게 전화를 끊은 후, 언니를 노려봤다.


"다시는 소희한테 내 얘기하지 마."

"아니 나는 걔가 그럴지 몰랐지!"


언제나처럼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듯 언니는 내게 변명을 하려고 했고, 나는 거기서 도저히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려 10년이다. 10년 넘게 소희가 나의 가족들과 자신의 부모에게 접근해서 계속해서 내가 자기를 용서해야 한다고 종용했고. 자기는 마치 무해한 것처럼 나와 화해하고 싶어 한다고 우겼지만.

결국, '소희가 길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마치 나를 죽일 것 같은 살기를 띤 눈으로 노려본다.'는 말을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또다시 피해는 오롯이 내 몫이어야 했다. 그래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언니의 눈을 똑바로 보고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강조했다.


"내가 말했지. 걔 제정신 아니라고. 길에서 날 살기를 띠고 노려본다고."

"… 알았어."


무엇보다 내가 화가 났던 건 소희가 자신의 남동생까지 거론하며 자기 뜻대로 주변인들을 조종하려는 듯 말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시우가 걱정됐다. 시우는 본래 자신의 누나를 불쌍하게 여기며 가능하면 누나의 의사를 존중해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우는 그 당시 나랑 몇 번 만나며 정신적인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었고. 나는 시우 하나라도 그 집안에서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그에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시우에게 문자 했다.


―시우야. 방금 네 누나한테 전화 왔는데. 네 누나는 나하고 너하고 만나지 말라고 뭐라고 하지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더 이상 네가 너네 가족 눈치 보며 살 필요 없어. 제가 잘못한 거 없잖아…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와 같은 문장으로 길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시우가 곧바로 답이 없길래 소희보다 먼저 시우에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즉시 전화했다. 시우도 그 밤에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받아 놀라는 것 같았고, 내가 보낸 장문의 문자의 내용에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시우 또한 자기 누나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말 없이 내게 알았다고만 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 소희야, 아니 아니 민주야. 어, 이모야."


안방에서 너무나도 다정하게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의 어머니가 소희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놀란 언니가 안방으로 가서 다시 어머니에게 '소희야? 소희가 엄마한테도 전화한 거야?'라고 물었지만, 어머니는 소희에게 통화로 말하는 목소리와 대비되는 찡그린 표정으로 언니는 안방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나와 언니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안방 문을 닫고 소희와 통화했다.


한 마디로, 어머니는 내가 거실에서 늦은 밤에 갑자기 소희의 전화를 받고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큰 실수를 했다. 우리 집 안방은 베란다 하고 연결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베란다와 연결된 안방의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본인이 안방 문을 닫은 상태이니, 당연히 나와 언니는 어머니와 소희의 통화를 듣지 못할 것이라 믿은 채 소희와 통화했다.


"응? 어. 이모는 잘 지내지. 그래, 너도 잘 지내? 응응. 수아언니? 수아언니 여기 없어. 지금 서울에 있지 뭐. 응. 수아언니? 글쎄. 이모한테는 아무 연락 없었는데."

"…."

"…."


소희가 우리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언니도 둘 다 침묵을 유지했다.

안방에서는 계속 어머니가 소희와 다정하게 웃으며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언니는 잠시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거실은 고요해졌고, 나는 혼자 남았다. 베란다에서는 계속 어머니와 소희의 통화소리가 반사되어 내 귀에 닿고 있었다. 잠깐 동안 분노의 열기가 올라오는 듯했던 심장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끼익.


곧이어 통화가 끝나고 어머니가 방 밖으로 나왔다. 주방으로 가더니 무언가 먹을거리를 가지러 간 듯했다.


"엄마."

"응?"

"소희한테 전화 왔지."

"응? 아닌데. 너네 언니도 그러더니 너네 자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엄마 방금 친구랑 통화한 거야."

"…."


그렇게 환하게 웃는 미소를 보여준 채 어머니는 다시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또 혼자 남았다.


거짓말. 언제나 그랬다.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서 둘째 삼촌을, 아빠를, 언니를, 소희를. 그러니까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 내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이미 내가 나의 두 눈으로 모든 사실을 목격한 그 상황에서도 말이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기만과 무시.

나보다 4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고 또 함부로 대할 수 있었는지. 어머니를 통해 모든 걸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참함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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