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오사'는 여성 영화일까?

퓨리오사, 거세된 여성

by 조조

2015년 개봉해 신선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끈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지난 22일 개봉했다. <매드 맥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의 과거 이야기이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는 여성 서사 영화라는 게 영화계의 주된 목소리다.큼직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투신이 상영시간을 채운다.

그러나 '여성 서사'에 대한 찬사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화려한 액션에 눈이 바빴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마음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퓨리오사>는 여성 영화일까? 퓨리오사가 여성이기 때문에, 대중은 별다른 의구심 없이 이 영화를 여성 영화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전반적인 맥락을 짚어보자. 이 영화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네이버 영화/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퓨리오사와 명예 남성

영화의 주인공인 퓨리오사는 어린 시절 디멘투스에게 납치당한다. 디멘투스는 퓨리오사를 구하러 온 엄마를 퓨리오사의 눈앞에서 죽인다. 그렇게 디멘투스는 퓨리오사의 숙적이 된다.


디멘투스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퓨리오사에게 투영하며, 퓨리오사를 자신의 딸처럼 대한다. 퓨리오사는디멘투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겨우 10살 깨 된 자신을 아내로 삼겠다는 임모탄 조에게로 간다. 그리고 임모탄의 동생이 퓨리오사를 겁탈하려고 몰래 빼내는데, 퓨리오사는 이 틈을 타 도망나와 노예병이 되어 살아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자. 퓨리오사는 작은 어린 아이다. 폭력적인 (자칭) 아버지에게서 어린 여자애를 아내 삼겠다는 늙은 아저씨에게로, 거기서 또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에게로, 퓨리오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진다. 여자가 아버지에게 종속되었다가 성인인 다른 남성에게로 전해지는 남성 사회를 고스란히 담은 모습이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들을 영화가 관조한다는 것이다.전형적으로 여성들이 겪는 폭력을 당하는 어린 퓨리오사는 담담하게 묘사된다.


<퓨리오사>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남성이다. 퓨리오사는 강인하게 자라지만, 스스로의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잘 싸우지만 전장을 주도하지는 못한다.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전략을 짜고 전장을 움직일 때, 퓨리오사는 하나의 장기 말일뿐이다. 단지 남성 사회에 잘 적응한 장기 말.


영화에는 퓨리오사가 남성주의 사회에 저항하거나 부조리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를 잃은 것에 대한 개인적 분노만이 퓨리오사의 동력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폭력을 여성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남성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들은 퓨리오사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성적인 폭력 따위에 무감한, 예외적이고 특별한, 그러니까 ‘남자같은’ 여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명예 남성으로, 남성들이 수용가능한 '여'전사로 그곳에 존재한다.


여성 서사, 여성의 이야기

서사란 이야기이고, 이야기란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킨다고 한들, 거기에 여성의 시선과 여성의 목소리가 없다면 여성 서사로이름 붙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성 서사란 무엇일까. <퓨리오사>처럼 전장에 선 여자들을 비춘 다른 이야기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정말 미소 짓고 있었을까>는 이스라엘의 여성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여성도 징집하는 이스라엘을 두고 성적으로 평등한 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곳에 있던 여성들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 특히 격전지에 배치될수록 남성 군인의 비중이 높은데,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 군인들은 자신이 가진 '여성처럼 보이는' 성향을 모두 감춰야 했다.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들이 내뱉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에 함께 웃는다. 전쟁과 폭력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망가뜨리지만, 여성은 그곳에서 '여성'이라는 자아를 하나 더 죽이는 경험을 한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명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은 페미니즘의 주된 지향점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여성주의라는 건 결국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해도, 동등한 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장 약하고 남성이 아닌 장애를 가진 가난한 사람도 부유하고 강인한 비장애인 남성과 똑같이 성취해낼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텅 빈 구호일까. 인권이라는 건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내겠다는 투쟁이 아니다. 내 나약함도 여기에 존재한다는 투쟁이어야 한다.


영화로 돌아가자. 퓨리오사는 어머니의 원수 디멘투스를 죽인다. 자신의 세대가 구원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좌절스럽다는 걸 깨달은 퓨리오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세대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퓨리오사는 어린 시절 임모탄의 아이를 낳는 수단으로 쓰일 뻔했던 인물이다. 그가 결국 젊은 여자들을 다음 세대를 낳을 수단으로 여기는 게 이 영화의 결말이다. 여기엔 여성의 궁극적인 기능을 출산으로 여기는 남성주의적인 시각과 완벽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오늘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게으른 낙관주의가 묻어있다.


화를 내지 못하는 퓨리오사

영화가 개봉된 후 일각에서는 조지 밀러 감독과 퓨리오사를 맡은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 사이에 불화설이 제기되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테일러조이는 "그 영화를 촬영할 때만큼 혼자였던 적이 없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안야는 대답을 피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안야와 조지 밀러 감독 사이에 불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이후 안야는 영화에서 퓨리오사가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현하는신을 넣기 위해 조지 밀러 감독과 3개월 동안이나 싸워야 했다고 털어놨다. 조지 밀러 감독에게 퓨리오사는 감정적이지 않은 기존 남성 캐릭터들과 같은 인물이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야 테일러조이에게 퓨리오사는 분노를 아는 인물, 부조리를 아는 인물이어야 했을 것이다. 퓨리오사가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긴 설득 끝에 촬영되었지만 결국 최종 편집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이 액션 영화의 주연인 것만으로도 충분할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여성 서사로 이름 붙여선 안된다고.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어린 애를 아내 삼으려는 아저씨를, 자신을 겁탈하려는 강간범을 관조하는 영화에 여성주의라는 찬사를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퓨리오사>는 여성의 분노가 ‘침묵 당하는’ 또다른 남성 영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