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대가족 틈에서 길을 잃은 어느 '착한 사람'

벼랑 끝의 이방인

by 마음멘토 이송

결혼과 함께 낯선 외국으로 터전을 옮긴 민우 님은 지금 아내의 대가족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습니다. 장모님, 처형 부부, 조카까지. 늘 사람이 북적이는 집 안에서 그는 경제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철저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요즘 그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건 동서와의 관계입니다. 같이 운동을 하거나 식탁에 마주 앉을 때마다 무례하게 느껴지는 말들이 쌓였고, 민우 님은 그때마다 꾹 참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면 갑자기 자리를 피하거나,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습니다.
민우 님은 자책하듯 었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왜 저는 바보처럼 남들 눈치만 보며 사는 걸까요?"
성격이 아니라 구조였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습관처럼 내 성격의 결함부터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민우 님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낯선 문화권, 경제적으로 기대야 하는 처지, 대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서열. 이 안에서 눈치를 보는 건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거기에 결혼 초기라는 불안정한 시기와 해외 이주라는 거대한 변화가 한꺼번에 겹쳤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에는 한계가 있는데, 민우 님은 이미 그 임계점을 훌쩍 넘긴 상태였던 겁니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게 있습니다. 민우 님은 원래 유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단호하게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경계 감각이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떠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있다 보니, 참고 참다가 한 번에 관계를 끊어버리는 패턴이 나타난 것뿐입니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상담을 하며 민우 님께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괴로움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환경이 준 충격입니다. 당신은 원래 자립심이 강하고 생존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다만 지금은 모든 걸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생존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뿐입니다.
민우 님의 착함은 사실 배려가 아니었습니다. 무력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그 순간의 최선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환경이 주는 압박을 내 성격의 문제로 착각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웁니다. 하지만 내가 놓인 자리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숨구멍이 트입니다.
지금 누군가의 눈치를 과하게 보고 계신다면,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절실하게 그 자리에서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착함이 진짜 배려인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방어인지 한 번 물어보신 적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