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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우진 Jun 13. 2021

기억을 잊기 위한 지침서

Manchester by the sea



기억을 잊기 위한 지침서

: Manchester by the sea


"All my friends are here. I'm on the hockey team. I'm on the basketball team. I got to maintain our boat now. I work on George's boat two days a week. I got two girlfriends. And I'm in a band. You're a janitor in Quincy. What the hell do you care where you live?"

"친구들도 다 여기 있고, 난 하키팀과 농구팀도 있어. 배도 유지해야 하고, 조지 아저씨네서 주 이틀씩 일도 하고 있지. 여자 친구도 둘이고, 밴드도 있어. 그런데 삼촌은 퀸시에서 그냥 잡역부잖아. 도대체 어디 살든지 무슨 상관이야?"


영화 ‘Manchester By The Sea’의 한 대목에서 나온 대사다. 먼저 등장인물을 소개하자면 패트릭Patrick과 그의 삼촌 리Lee가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패트릭의 아버지 조Joe가 죽었고 그는 유서에 후견인으로 자신의 동생인 리의 이름을 남긴다. 대사는 패트릭이 자신을 데리고 본인이 살던 도시로 이사 가려 하는 후견인이자 삼촌, 리에게 쏟아 부은 말이다.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지 전혀 모른다면, 무작정 이사를 강요하는 리가 미워 보일 것이다. 심지어 그는 어디서든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잡역부이기에 굳이 돌아갈 이유도 없다. 이 대목이 영화의 시작이다. 만약 지나친 비약으로 클리셰 범벅인 가족 영화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고집스러운 이기심에 의한 가정과 주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단순한 시놉시스는 아니다.

영화 'Manchester by the sea'의 장면


“What the hell do you care where you live?, 도대체 어디 살든지 무슨 상관이야?”


이 또한 패트릭의 대사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유를 모르기에 답답해 한다. 진짜 무슨 상관인 걸까. 영화 속 리는 결국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 속사정을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다. 한때는 리도 맨체스터에 살았다. 그곳에는 본인이 사랑하는 바다가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그 평화를 깨트린 것은 본인이다. 끔찍한 실수로 온전한 생활이 파괴되었고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 도시를 떠났다. 그 뒤로는 죽은 사람의 모습으로 간신히 숨쉬며 살아간다. 눈 앞에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없으니 간신히 숨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오게 된 맨체스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아픈 기억을 되새겨 준다. 그가 패트릭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가득한 곳에 돌아오니 기억이 아른거려 목이 조여오는 것이다. 그가 다시 살아가려면 결코 맨체스터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가장 행복했던 곳이 씻을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채워지자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그 곳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난 리는 기억을 잊은 만큼 모든 걸 잃었다. 영화속에서 “How are you?”라는 단순한 안부 말에도 쉬이 답하지 못하는 그가 죽어가는 듯보이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닐 듯 하다. 그는 복각되려는 기억을 막아 선 채 삶과 죽음 사이, 어느 즈음에 서 있다. 가장 면밀히 행하는 행동 이라고는 기억을 잊는 것 뿐이다.



누구나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추억 하나쯤은 있듯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 어떻게 잊어야 하는 것일까? 영원히 잊는 방법은 단어부터 너무도 낯설다. 영화 속 리처럼 물리적으로 도망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다른 기억으로 덮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 보다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의 조엘Joel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곳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누구도 호의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기에 생경하다.



이제껏 대다수가 습득과 저장 그리고 극복만 배워왔기에 잊어버리거나 포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분명 서툴고 힘든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 살든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아픈 말을 쏟아 붓는 패트릭에게 리는 그저 “자야겠다”라는 말로 대답을 회피한다. 이해를 받는 것 마저 포기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극 내내 사과의 말만 내뱉는다. 결국 잊고자 하는 기억은 본인 혼자서만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니 외롭기까지 한 싸움이다.


아무래도 떠오르려 하는 기억 앞에서 몸부림치던 리의 이 대사가 기억을 잊는 방법에 대한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I can’t beat it. I can’t beat it. I’m sorry, "

"못 버티겠어. 못 버티겠어. 미안해"



겨우 기억 하나 잊자고 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막상 또렷이 기억하려는 것은 노력해도 잘 안되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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