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진행형인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들 지내시는지요? 저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 지난 삶과는 많이 다른 시간을 살아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래 전 한 청년이 하는 강의에 갔는데, 그가 청중을 향해 질문을 던졌어요. 자동차가 왜 달릴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저는 뻔한 질문을 한다면서 당연히 엑셀레이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뻔한 답이었던 거지요. 청년은 브레이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엑셀레이터를 밟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놀랍고도 신선했던 그 질문이 코로나 시대에 다시 떠오를 줄 몰랐습니다.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고 달려온 날들이 이제야 보였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을 줄 모르고 줄곧 엑셀레이터만 밟아온 시간들이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재작년(2019년) 가을에 제 삶의 브레이크를 스스로 걸기는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과부하가 왔던 가 봅니다. 쉼과 함께 저를 돌아볼 시간을 갖고 싶어서, 아니 앞으로는 종종 그런 시간을 갖겠다고, 제주를 은신처로 삼고 떠났습니다.
그것도 11월 11일이라는 날을 택해 거사를 치렀답니다. ‘처음으로(1),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의지로(1), 혼자 떠나서(1), 하루 묵는(1)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를 담기에 이 만한 숫자가 없었지요. 첫발 떼고 용기 얻은 저는 다시 떠나기 위해 이듬해 2월 초로 모든 일정을 맞추어 예약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취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외부와 차단되면서 제 시선과 활동영역은 점점 더 제 둘레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뒷산의 숲과 거실책방이 제 생활의 중심 영역이 되었죠. 때 마침 어깨 부위에 심한 통증이 오면서 운동제한이 있었고, 건강검진에서 적신호가 켜지면서 몸도 저의 큰 관심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된 오후 세시를 기록하면서 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제 몸과 마음은 과연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지 아찔합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사계절의 작은 변화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흐트러진 몸도 돌볼 수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오후 세시에도, 제가 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가장 간소한 삶을 살았고, 가장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저의 몸과 시간을 구해주었습니다. 저쪽 강에서 이쪽 강으로 건네게 해준 소중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이지요.
제주에서 나를 첫 대면한 뒤 숲에서, 몸에서, 오후 세시에 나 자신과 만나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알아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그 만큼 ‘나’라는 섬은 단단하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90살이 되었을 때조차도, 반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나를 향한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길에 담 쌓지 말고 계속 드나들어야겠습니다. 나로 향한 길만큼이나 기대되고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요? 그 길을 잘 닦아 놓아야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길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