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시게조가 될 수 있다

[황홀한 사람] 아라요시 사와코, 청미출판사

by 김건숙

평균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오래 살면 건강하든가, 건강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않는 게 대부분의 바람이지만 그것이 어디 우리 소관인가.

게다가 치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할 수 없으니,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끼치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10년 새 4배로 늘었고, 65세 이상에서는 10명 가운데 1명이 앓고 있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몸은 노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치매환자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획기적인 약이 해결해 주지 않는 한 그 숫자는 평균 수명 연장과 비례해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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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돌보는 이야기가 소재인 <황홀한 사람>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궁금증과 흥미를 계속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다 읽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아키코는 별채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치매가 시작된 시아버지 시게조를 전담하여 돌보게 된다.

평소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따스한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시게조는, 아내의 죽음은 물론 딸, 아들, 손주도 못 알아보면서 오로지 아키코만을 알아보고, 아키코의 말만 순순히 듣는다. 시게조의 생존 본능이 놀라울 정도다.

남편은 워낙 집안 일에 무관심한 사람인데 시아버지가 아들을 적대시 하니, 고등학생 아들이 조금 거들기는 해도 간병은 오롯이 아키코 몫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느라 잠도 부족한 상태에서 아키코는 시아버지를 위해 최선의 길을 찾는다.

다행히 아키코가 쓰러지기 전에 시게조의 치매의 진행 속도도 빨라지고, 죽음에도 이른다.



제목 때문에 '황홀한 사람'의 구체적 이야기가 어디에서 언급될지 궁금했다. 284쪽에서 처음으로 '황홀'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시게조는 아키코가 자기 손을 붙잡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듯 했다. 흐리멍덩한 눈을 반쯤 감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황홀한 세계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284쪽)


노인회관에서 시아버지를 데리고 나오던 어느 비오는 날, 우산도 내팽개치고 빠른 걸음으로 걷던 시게조가 탐스럽게 핀 양옥란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키코는 시아버지가 아름다움과 추함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치매에 걸리기 전 시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불만만 쏟아내면서 살아왔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린 후 종종 미소까지 지었다. 아키코가 자신의 욕구를 알아맞혔을 때, 먹을 것을 줄 때, 자기가 부르면 와줄 때, 때로는 혼자 있다가도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아키코는 결혼 후 그런 미소를 처음 보았는데, 아들이 갓 태어나 천사처럼 웃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시게조는 꿈을 꾸는 듯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이 장수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극치인지도 모른다. (394쪽)


시게조는 아키코의 따스한 보살핌과 희생으로 짧지만 황홀한 세상을 체험하고 떠났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세상에는 아키코가 얼마나 존재할까? 그리고 우리가 그 나이에 도달했을 때는?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자식들이 요양병원에 들여보내지 않게 우리 스스로 건강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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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1년 5개월 만에 면회하고 왔다. 유리문 너머로 잘 들리지도 않는 말 몇 마디를 복지사의 입을 통해 주고 받다가 왔다. 돌아와서도 엄마의 모습이 떠나지 않고, 죄책감이 몰려오나 선뜻 모셔오지는 못한다.

역시 지난 주 줌으로 대학원 총회가 있었고, 존경하는 은사님이 '늙음과 죽음'이라는 강의를 해 주셨다. 한 동문이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해 드려야 좋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에 한하지 않으며, 부모님은 온몸으로 자식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그걸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란다. 그렇다. 시게조의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미래의 우리 모습을 그가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게조는 취미도 없었고, 까다롭기가 한량없어 이웃과의 충돌도 많았다. 그 흔한 극장조차 가보지 않았고, 화초를 가꿔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작은 집 안에서 아내와 단둘이 움츠리고 살다보니 노화를 막기 위한 정신적인 자극도 없었다.

아키코도 시아버지를 보며, 머리를 쓰고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심신을 단련하고 노후를 즐겁게 보낼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엄마를 보면서 건강을 위해 더 열심히 걷고, 현재의 삶을 느끼고 즐기면서 건강한 노후를 맞을 것이란 결의를 한다.

1972년대에 출간된 이 소설은 192만 부가 팔리고, 드라마와 연극,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일본의 노인 복지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멋진 작가가 쓴 아름다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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