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사이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한순)

by 김건숙

평소에도 자극적인 음식을 그 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점점 더 담백한 음식을 찾는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거나 발사믹 식초에 간장을 뿌리고 그 위에 살짝 참깨만 뿌린 채소들도 맛난 찬으로 먹는 사람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종종 데리고 가는 식당에도 갖은 산채 나물을 정갈하게 만들어 내어놓는 곳이다.

어디 입맛 뿐이겠는가. 마음을 맑게 씻어주거나 잔잔한 여운을 주는 글맛에도 많이 이끌린다. 이번에 읽은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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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에 있는 동네책방 <꽃, 책으로 피다>에서 서가를 둘러보던 중 '편애책방'에서 가장 먼저 집어들게 한 책이다. 제목에 먼저 눈이 갔고, '나무생각'이라는 출판사 이름도 나무 사랑꾼인 내게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저자 한순은 남편과 함께 출판사를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가장 마음을 끈 건, 저자가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을 산다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을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귀촌을 꿈꾸었다. 점점 그것이 힘든 것이라는 걸 알고나선 좋아하는 곳에서 일 년살이하는 것으로 변경했고, 지금은 일주일은 현재 사는 집에서 일주일 정도는 전원에서 지내는 것은 어떨까로 바뀌고 있다.

생각이야 만리장성을 쌓아도 행동은 전혀 하지 않은 우리이기에 앞으로도 꿈만 꿀 지도 모르겠다.(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그래서인지 과감하게 생각을 옮긴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마음에도 볕이 잘 들었습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 중간 중간에도 읽게 만드는 편안함과 끌림이 있었다. 시를 쓰고 노래도 하는 예술인이어서인지, 문장이 수채화 같이 맑기도 하고, 유화 같은 묵직함도 배어 있었다. 너무 많이 밀려 있는 책들 때문에 어서 빨리 읽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늘 갖고 있는 내가 드물게 아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다 했다.

우리는 일하는 존재라고 할 정도로 일에서 벗어나기란 좀체로 어렵다. 일로 평가를 받고, 일로써 존재를 인정 받는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느 날, 이 책을 엮고 간만에 달콤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듯했다. 물을 가득 담은 유리 그릇에 아로마 향 꽃잎 촛불을 띄우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며 따끈한 물에 몸을 담고 있던 그 상태를 "나는 일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썼다. 이토록 거룩한 표현이라니!

"나의 발자국마다 연둣빛 봄이 고이게 하리라."라는가 "8월이 물고기처럼 숲 속을 헤엄쳐 간다.", "빛 속에 숨은 생명의 씨, 깊이 잠든 바위를 두드린다." 등의 표현은 내 정서를 건드렸다.

'시간과 환경을 견디며 나를 되찾는 본질 회복 에세이'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전혀 구멍이 없거나, 아주 큰 구멍이 있는 독자들에게 비움과 채움을 줄 잔잔한 에세이집이다. 다 읽고나서 '내 마음에도 볕이 들었다.'라고 한다면 서로 합이 잘 맞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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