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글, 비채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나 그들의 글엔 휴머니즘이 담겨 있고,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따스하고 여운을 준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바탕을 둔 그들의 건축설계은 온기가 담겨 있는 문학 작품과도 같다.
설계사무소 직원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431페이지의 장편소설이다. 두꺼운 책이라고 해서 모두 읽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이 책의 리뷰들엔 찬사가 가득했건만, 내겐 빨리 나아가지 않았을 뿐더러, 도중에 다른 책을 몇 권 읽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타. 다 읽고나서는 곁에 두고 싶고, 나중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묘한 책이다.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아직 가지 못한, 그러니까 경치가 좋아 별장이 많다는 가루이자가 소설의 배경이다. 도쿄에 적을 두고 있는 한 설계사무소 직원들이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을 준비하기 위해 이 곳에 있는 별장에 모여 살고 있다.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날이 새고 얼마 안 있다 잠이 깬 나는, 좁은 침대에 누운 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선생님 기척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호기심을 가득 품게 하는, 이 첫 문장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룰 것인지 복선을 깔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날로그 감성과 이미지로 독자를 단숨에 잡아끈다.
그 '선생님'은 무라이 설계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칠십 대 중반에 들어선 노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이다. 주인공 사카니시 도오루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 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만들어내는 인물이었다.
사카니시 도오루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건축회사는 발주와 감리만 받는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가공이 다 된 재료를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끌도 대패도 톱도 거의 필요하지 않는 집, 즉 숙련공의 솜씨가 전제되지 않는 공산품으로서의 집들이 시공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0쪽)
마치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을 연상케 하는 무라이 선생의 말이다. 노건축가의 건축관이 확연히 드러나고, 마음의 여백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꽃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그 집에는 꼭 있었으면 했고, 볼륨이 있는 집이니까 어딘가 한 구석 애교스러운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 (292쪽)
그런데 밑줄친 문장 가운데 가장 오래 마음이 머문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갔을 이 문장이다.
유키코는 밝은 미소로 대답하고 나서 그대로 가사이 씨와 산초 열매를 딸 의논을 시작한다. 삶아서 냉동하기도 하고, 장아찌를 만들기도 하고, 두 사람은 매년 산초나무 열매 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 같았다.(296쪽)
삶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어찌 보면 크게 중요해보이지 않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고,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계속 미뤄놓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들을 다시 쭉 읽어보는 일인데, 밀려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낸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건축 설계사무소라면 빡빡하고 건조하며 무료할 것이라는 내 선입견을 날려버렸다. 꼭 건축가가 아니어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