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에 오르다
어제 내딘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요즘 '혼자' 하는 것들을 여럿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남편과 떨어져 살지 않았다면,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확률이 백 프로다. 그러니까 평소 좋아하는 일들인데 남편이 곁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하게 되었다고 하는 쪽이 맞다.
그러므로 그 일들은 남편과 늘 함께 했던 것들이다. 물론 강의 들으러 가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콘서트에 가는 일들은 오래 전부터 혼자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서 벗어난 새로운 분야에선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는 영역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이었다.
그런 내가 혼자서 산에 가기로 했다. 동네 뒷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차를 타고 이동하고, 왕복 2시간 이상은 걸리는 곳을 말한다. 결혼 전에 2박 3일에 걸쳐 지리산 정상에 오른 일을 평생 자랑거리로 삼을 정도로, 나는 산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물론 산과 바다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물으면, 전혀 망설이지 않고 산이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산에 가자고 여러 번 이끌 때도, 나는 집에서 책을 읽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 했다. 나는 산멀미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산에 오르면 숨이 가빠지고 울렁거리면서 쓰러질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하니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황금 같은 주말까지 반납하며 굳이 산에 오르려 할 생각을 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판소리를 배우면서 폐활량을 높이려고 남편 따라 나섰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산멀미도 사라지고 가뿐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산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숲 냄새에 기분이 상큼해지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졌다. 꽃이 피고 새 잎이 돋울 때면 그것들과 눈 맞추느라 가던 길을 멈췄다. 단풍 든 나무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눈 깔린 산길은 고즈넉했다. 비탈진 길을 오른 정상에서 땀 식히며 바라보는 풍경들은 얼마나 멋지던가. 일주일치의 고단함을 다 씻어주었다.
혼자서는 처음 오르는 일이니 남편과 많이 다녔던 곳으로 갔다. 나서기까지 쉽지 않았으므로 익숙한 곳으로 발길이 닿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요일이어서 많은 이들이 가족이나 연인들과 산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혼자 온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속으로 동지 의식이 느껴졌다.
남편이 이끌어 어쩌다 산행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만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그것도 딱 멈추고 말았다. 남편이 오면 어쩌다 가는 정도이고, 8년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산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었다. 내려왔을 때는 혼자 해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남편과 함께 하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 하는 일, 그러니까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이 그토록 그윽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면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었다. 55년 동안 가족을 비롯하여 타인들과 더불어 살았으니 이제는 혼자 있는 기쁨도 누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 일인지도 알았다.
베를린 자유대학교 신학 교수였던 마르크바르트는 “성숙은 무엇보다도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타인들의 지지에 기대지 않고도 홀로 있을 수 있어야만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독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찾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풍부한 내면적 삶이 있어야 고독에 몰입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현대인이 끊임없이 SNS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일도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홀로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는 풍부한 내면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자연 속에 있을 때 자신의 내면과 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홀로 산행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오르고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사색과 성찰은 자신을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럴 때면 자신에 대한 신뢰도 같이 쌓이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제야 조심스럽게 홀로서기를 해 나가는 중년 어른이(어른아이)인 나에게 축복과 함께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