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찍으멍, 걸으멍, 대부 해솔길

어제 내딘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by 김건숙

몇 년 전, 집에서 가까운 한 대학의 사회교육원에 개설된 사진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수강생들은 매주 과제를 받아 온라인 카페에 올리게 되어 있었다.

대부해솔길 1코스 풍경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카페에 공지 하나를 올렸다. 수강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으로, ‘대부해솔길’을 함께 걷자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길동무를 구하는 글이었다. 걷고 싶다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평일에 걷는다는 구체적 일정이 나오자 네 명으로 좁혀졌다. 걷기에 가장 좋은 인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부해솔길을 걷는 팀이 꾸려졌다. 모두 중년 여성들이었다.

십대 후반부터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지 취미란에 걷기라 쓰기도 했다. 지금은 쏟아져 나온다고 해야 할 정도로 이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나는 흔치 않던 초창기 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고 나서는 힘들었다는 내용들은 다 잊고 낭만적인 것들만 기억에 남겨두는 것 같았다. 저자들이 고르고 골라서 실었을 아름다운 풍경과 걸으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에서 선택해서 썼을 친절하고 따스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걷고 나서 얻은 깨달음이나 감동을 말이다.

순례자들이 묵는 한 알베르게 주인이 한국인은 처음 보았다고 한 걸로 보아서도,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도 그러하였다. 김남희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마치고, 산티아고는 자신의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지금 발 딛고 선 자리에 대해, 지금 눈앞에 있는 이에 대해, 온 몸과 마음이 전율하며 깨어나던 경이로운 체험”이었다고 했다. 그 길을 걷고 나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도 했다.


김남희의 책은 나를 강렬하게 붙들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내게도 시간이 자유로워질 50대 어느 지점이 되면 가고 말리라 꿈을 꾸었다. 그리고 김남희를 산티아고 길로 인도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시리즈도 읽고, 산티아고 여행기도 눈에 띄면 읽었다. 이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웃 나라라도 되는 양 많은 이들이 다녀오고 있다. 부모님과 걸었다는 이도 있고, 그 길에서 결혼식도 올렸다는 이도 있을 정도이니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인 듯하다.

김남희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읽은 뒤 한 1년 정도 뒤에 제주 올레 이사장 서명숙의 <제주올레여행>기가 나왔다. 서명숙 올레이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고향 제주로 내려가 올레길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제주올레길도 걷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시간은 마냥 흐르고만 있는데, 내 꿈은 그냥 네모 상자 안에 갇혀 있었다. 그 나마 제주올레길은 몇 년 전 5코스와 7코스, 18코스를 걸어보았다.



대부해솔길 7코스 풍경

감사하게도 제주올레길이 생기고 나서 우리나라 곳곳에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졌다. 내가 사는 곳에도 대부해솔길이 생겼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1코스 시작점에 갈 수 있다. 그토록 꿈꾸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올레길에 견주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보자면 10분의 1, 제주올레길로는 5,7배나 짧은 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해솔길 지도가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꼭 걸으리라 마음먹고, 사진반 카페에 글을 올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종일 걸었는데, 두 달 반 만에 완주했다.


대부해솔길 에서 만난 노을

대부해솔길은 총 7개 코스로 대부도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자연 그대로 만들어진 오솔길과 해안길을 따라 걷는 길이 제주올레길과 비슷하다. 많이 알려진 1코스와 달리 나머지 코스는 걷는 이들이 거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젖은 길들이었다. 특히 대부도는 육지에서는 만나기 힘든 진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다. 물이 빠져 넓게 펼쳐진 갯벌도, 물이 가득 찬 만조 때의 바다도 두 번 말해 무엇 하리.


대부해솔길에서 만난 갯벌

사진반에서 모인 것이니만큼 전 구간을 도는 동안 우리는 무거운 중형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갯벌을 만나면 바로 전까지도 떨던 수다와 웃음소리를 뚝 멈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 내려갔다.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은 실로 무아지경이었다. 멋진 산이나 들녘 풍경, 노을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이니 눈에 걸려드는 것이 있으면 눌러도 찍고, 올려도 찍고, 소품도 가져가서 찍었다.



대부해솔길 7코스에서 만난 풍경

서먹했던 처음 분위기는 중년 아줌마들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방 사라지고, 수다와 웃음소리로 가득 찬 길을 만들었다. 집안의 문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길을 잃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기도 하고,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기도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도 겪었다. 지금은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이제 우리들은 그 때 맺은 끈끈한 정과 경험으로 또 다른 일들을 꾀할 시간을 맞았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더 이상 부모 손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 때의 열정을 다시 펼쳐 나갈 수 있다. 74킬로미터의 길 위에 남긴 네 명의 발길, 그러니까 총 296킬로미터의 길 위에 쌓아올린 힘으로 다시 내딛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40분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