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 산책

어제 내딘 한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by 김건숙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통틀어 이토록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공부도, 일도 하지 않은 아이였을 때조차도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을 테니 말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치악산 깊은 산골에서 생활하던 시인이 그러한 삶을 산다고 해서 몹시 부러웠는데 내가 요즘 그런 생활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미세 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괜찮으면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오후 2~3시대이다. 가장 따스한 햇살을 머리에 이고 뒷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게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황금 시간대이다. 그러므로 예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연초가 되면 운동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집 주변 개천이나 산을 걷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것은 어느 순간 살짝 꼬리를 감추고 만다. 활동하기 좋은 봄날에 몇 번 나갔다 오면 뒤 이어 장마가 오고 더위가 왔다. 그러면 그 핑계로 멈추었다가 선선해지는 가을되어 다시 걸어본다. 하지만 금세 날씨가 추워져 또 멈춘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시간적 여유를 못 가진 탓이리라. 뭐가 그리 바빴을까.

집을 나가 5분이면 닿는 동네 뒷산은 40분이면 한 바퀴 돌고, 십 분 정도면 정상에 오른다. 산책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습관이 들려면 21일이 걸린다고 하니 그 기간까지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첫 발을 떼는 것만큼은 아니다. 운동을 안 하고 사는 내게는 산까지 가는 시간이 가장 길고 어려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도는 아래 둘레길이 아닌 산 속으로 들어가 오솔길을 걷는다. 길이 있어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들어 계속 그 곳을 걷는다. 걷다 보면 사람들을 몇 명 만나지만 대체로 고요하다. 그 곳에 있으면 방금까지도 내 곁에 있었던 여러 생각과 어지러운 것들이 싹 사라진다. 오로지 자연과 나만 존재한다. 사람들이 힘들 때 자연에 귀의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고요한 숲 속에서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을 뒤따라 총총 걷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경사진 곳을 오를 때는 발바닥에 자극이 오면서 근육이 이완되고 지압을 받는 느낌이다. 그러면 마음까지 쭉 퍼지며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책을 읽는다든가, 좋은 음악을 듣는 정신적 자극도 큰 즐거움을 주지만, 몸의 자극으로 얻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다는 걸 숲이 알려준다. 심장까지 부풀어져 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이 있으니 자연의 변화이다. 날이 따스해지며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작은 나뭇가지에 새순이 삐죽 나오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허리를 구부려 눈을 맞추며 생명의 경외감에 젖는다. 그럴 때면 그림책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삶에서 아름다운 것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을 때에도 잊지 마세요.

들에 사는 토끼와 산책길에 마주치는 사슴이 있다는 걸요”

- <삶>, 신시아 라일런트 글, 브렌덴 웬젤 그림

거기에 이 말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잊지 마세요, 새순을 내는 여린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힘을 내라고 말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부풀어 오르며 기운을 얻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다 보면 40분을 훌쩍 넘긴다.

한 바퀴 돌고나면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햇볕이 가득 내리고 있는 곳이다. 이 소박한 즐거움을 그 동안 누리지 못했다. 건강을 위해 다니기 시작한 오솔길이 이제는 중독처럼 되었다. 40분 중독길!

산책을 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지금 코로나에 걸려 죽는다면, 그 동안 해온 일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나를 독촉하며 달려온 시간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나? ”


산을 돌고나면 마음도 느긋해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그려진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내가 나를 너무 재촉하며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산을 다녀오고, 강아지 산책을 하고 나면 오후 시간이 다 가버린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해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일주일,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맞는 속도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그 걸 거스르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낸다고 애를 너무 썼다.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고 달려온 날들이 이제야 보인다. 아니면 나는 이제 과거의 내가 아니어서, 많은 양을 빠르게 처리할 능력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내게 맞는 속도를 찾아서 자연으로, 느긋함으로 속은 채우고 일상은 덜어내려 한다. 앞으로도 40분 산책이 도움을 많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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