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대머리만 부를 줄 안다면!
어제 내딘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치킨집에 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전부터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 영화에서 보면 깊은 계곡이나 폭포 아래에서 소리 연습하는 것 말이야. 강습소에서 가는 산공부가 그런 것이라는데 3박 4일만 하고 와도 될까?”
이 말은 ‘엄마 마트에 다녀올 테니 둘이 잘 놀고 있어.’라든가, ‘엄마 수업하러 갔다 올게. 배고프면 저기 준비해 놓은 간식 먹어.’ 등의 말처럼 가볍게 툭 던질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먹게 해주고, 눈치까지 살피면서 말해야 했다. 그 만큼 산공부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큰 아이는 바로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무엇이든 오케이 해주는 사람이라 아예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 문제는 작은 딸아이였다. 마트나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가 있는 사이에도 작은 아이의 온 신경은 내게 쏠려 있고, 잠시라도 떨어지는 걸 불안해하는 껌딱지였다. 나도 결혼한 후에는 혼자서 집을 떠나본 일이 없었다. 여행을 할 때도 늘 네 식구가 함께였다. 그런 걸을 감수하고서도 산공부에 가고 싶은 열망이 컸다.
드디어 작은 딸이 입을 열었다.
“엄마랑 떨어져 있는 것은 싫지만, 엄마가 그렇게 원한다면 다녀오세요.”
예상 못한 말이었다. 내 간절함이 딸에게도 전달된 것일까. 큰 장막이라 여긴 작은딸의 이해를 얻은 나는, 그 해 여름 산공부를 떠날 수 있었다.
그 해에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따라서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있었던 ‘산공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판소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산중으로 들어가 오로지 소리 공부에만 정진하는 것이었다. 입문한지 얼마 안 된 때였으므로 내 열정은 하늘이라도 찌를 기세였기에 산공부에 다녀오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판소리를 처음 접한 것은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TV에서 가슴을 후벼 파고 드는 노래가 있었다. 조선시대 명창을 주인공으로 한 휴먼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언젠가는 판소리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 때 김영동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을 정도로 그의 곡들을 좋아했는데, 새로 출시된 테이프 마지막에 ‘쑥대머리’가 실려 있었다. 중저음의 남자가 부르는 애절한 쑥대머리는 대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따라 부르려고 해도 음절도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그 때 ‘쑥대머리’만 부를 줄 알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판소리를 배우려면 소리의 고장인 전주에 가야되는 줄 알고, 언제쯤이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고대하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운명 같은 우연으로,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예대 정문 쪽에 소리 강습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품은 지 20여 년 만에 소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소리는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초 창법을 배우고 배에 힘이 실리기까지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서 쑥대머리를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산공부에 가면 ‘쑥대머리’를 배우기로 했다.
전 일정이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일도 하고 있었고 가족들이 있었기에 다녀온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강습소 일정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인제로 향했다. 산공부 장소는 민족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선생을 기려 만든 수련장이 있는 만해마을이었다. 우리가 머물며 공부한 곳은 문인창작집필실이었다.
산공부에 참여하고 있는 소리동료들은 어린 초등학생에서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함께 밥 먹고 잠을 자면서 생활하지만 소리 공부는 일대 일 강습이었다. 선생님한테 소리를 받아 배우고, 녹음한 것을 각자 좋아하는 장소에서 복습하는 식이었다. 만해마을 주면에는 계곡이나 숲, 산책로 등이 있어서 소리 연습하기 좋았다.
짧은 일정인데다가 어렵게 시간을 냈고, 마침 소리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오로지 소리 연습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어린 동료들을 보니 일찍부터 소릿길로 인도해준 그들 부모가 존경스러웠고, 그들이 몹시 부러웠다. 어릴수록 감각적으로 익힐 수 있어 그 성장이 빠르다. 나이 들어 하려면 그 만큼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늦게라도 시작했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나는 간 날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온갖 창법이 들어 있는 ‘쑥대머리’를 나 같은 초보가 익히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실력도 턱 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실력을 따지기에 앞서 오로지 열정으로 밀고 나갔다. 입소한 날도 선생님이 호출할 때까지 밤이 늦도록 어둠 속에서 연습했고, 아침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솔밭에 가서 소리를 질렀다. 낮에는 계곡에 가서 했다. 영화에서처럼 폭포 아래는 아니었지만 계곡의 낮은 폭포에서 물소리를 튕겨내려 목이 터져라 불렀다.
산중이라 해가 지면 온통 캄캄해져서 무섭기도 할 텐데, 나는 소리 연습에 홀려서인지 개의치 않았다. 한 날은 아무리 연습해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했다. 수 백 번은 그러고 있을 때 제대로 나오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전율이 일고, 뜨거운 눈물이 볼 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산공부 마지막 일정에 맞춰 들어갔고, 나오기 전날에는 발표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너무 연습에 매진한 나머지 목이 다 쉬어서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준 홍삼엑기스도 먹고, 목을 따뜻하게 해서 저녁에는 겨우 목소리가 나와 발표회 때 ‘쑥대머리’를 부를 수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판소리를 하려니 몹시 떨렸지만 가슴이 벅찼다.
산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하려고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공원으로 이끌어 가족들 앞에서 ‘쑥대머리’를 불렀다. 그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들은 큰 박수를 쳐 주고 칭찬을 해주었다.
‘쑥대머리’를 배우고 나면 원하는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산을 하나 넘고 나니 또 다른 산을 넘고 싶었다. 그래서 춘향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바탕(한권)을 다 끝내고 두 번째 익히고 있는 중이다. 나는 목청이 좋지도, 장단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저 판소리가 좋을 뿐이다. 지금은 시작할 때의 열정은 많이 줄었지만, 쑥대머리를 배우겠다는 도전이 10년을 넘는 배움 길을 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