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를 씻으며

어제 내딘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by 김건숙

눈을 뜨고서도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 댔다. 어깨 통증 줄인다고 바닥 온도를 최고로 높이고, 어제 읽던 책도 가져왔다. 한참이 지나 몸으로부터 일어나도 좋다는 신호를 받고나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주방으로 갔다. 밥솥에는 찬밥이 한 주걱 정도 남아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바로 쌀을 씻었겠지만 햇반을 먹기로 한다.

FM을 틀어놓고 냉장고에서 상추를 꺼내와 씻는데 기분 좋은 감정이 밀려왔다. 단지 흐르는 물에 한 잎 한 잎 상추를 씻고 있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행복이 느껴지다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잔잔하고 포근한 그 감정이 날아가지 않도록 마음 한 자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코로나19 확진자도 10명 이하로 줄어들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런 행복을 또 느낄 수 있을까?

세 달 넘게 집콕 생활하는 동안 모든 알람을 껐다. 일정표를 확인하던 일도 사라졌다. 늘 같은 시간에 나가야 하는 직장인이 아닌데도 뒷산에 꽃이 피는지, 단풍이 드는지도 몰랐다. 할 일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 그때 하고 있는 일을 어서 마쳐야 된다는 생각 속에 갇혀 있었다. 열정도 넘치고 호기심도 많아 눈에 걸려드는 것이 있으면 그 속으로 바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몰입형이라 어떤 일에 빠지면 밥 먹는 것도, 날이 새는 것도 모른다. 그러하니 학교를 다닐 때든, 사회에서든 두각을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 자부심이기도 했다.

오십이 넘어 삶의 고삐를 좀 늦추기는 했으나 요즘만큼은 아니었다. 나를 압박하는 존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다음 일을 계산 하느라 저 멀리 달려 나가곤 하니 엇박자 생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내기 위해 서둘러야 했던 조급함은 조화롭지 못한 삶을 살게 했다. 자연히 몸도 상했다.

그러므로 상추 씻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그런 일들은 안 하면 좋을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가족을 위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씻기를 끝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것은 치워버리고 싶은 걸림돌이었다. 따라서 오늘처럼 상추를 씻으면서 이런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 순간의 섬세한 감정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건 단순히 상추 씻는 행위 하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눈이 스스로 떠질 때까지 자고, 몸이 일으켜 세울 때까지 침대에 있었으며, 식욕이 돋울 때에 식사를 준비하는 일련의 여유로움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나는 열심히 해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이 미덕이었던 세대를 거쳐 온 사람이다.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다. 따라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으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불안감이 훅 하고 올라온다. 그럴 때면 책이라도 붙잡고 읽어야 한다.




상추 씻기는 몸과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급하게 달려가려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내 감정과 컨디션을 보살피는 일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어도 계속되어야 한다. 늘은 아니어도 중간에 빈둥대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고 몸이 원하는 대로 그냥 놔두는 날들을 조금씩 늘려야 한다. 이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해 줄 아름다운 도전이다.

좋은 감정이 스며들어 있을 상추에 잘 구운 삼겹살을 싸 먹으며 ‘빈둥대는 시간’을 한껏 즐기니, 시작하지도 않은 하루가 충만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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