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읽고 쓰며, 후반 인생의 길을 찾다
어제 내딘 걸음이 오늘을 만들었다
그 때 나는 어쩌자고,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 책을 선택했을까? 여행이라든가, 걷기로도 가능했을 터인데, 날마다 책을 한 권씩 읽고 리뷰까지 쓰기로 하다니! 그것도 한 달이나, 석 달이 아닌 1년 365일을 말이다. 9년 전 일이니 패기도 한 몫 했을 터, 지금이라면 두 손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이다.
40대 중반을 걷고 있던 내게는 큰 물음이 있었다. 바로 ‘후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리하여 1년 동안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명이 길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늘어난 노년을 설계해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중년까지 해온 일을 노년에도 계속 할 수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들 가운데엔 명예퇴직과 은퇴를 피해 가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는 청소년 대상으로 독서와 글쓰기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점점 나이차가 벌어지면서 그 일에서 손 놓아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50이 넘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글을 쓰며, 강의를 하는 삶이었다.
이 큰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겠다고 한 것이 내게는 가장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책은 초등학교 때 만난 이후로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삶의 방향을 알려주고, 인격과 품성을 길러주었으며, 단단한 뿌리를 내려주었다. 어려운 일에 잘 견딜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책이다. 그러므로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굳이 날마다 한 권씩 읽어야 했을까? 정약용 선생은 ‘무릇 책을 읽은 동안 한 자라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세밀하게 연구하고, 그 원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수백 권을 엿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백 번 맞는 말이다. 100권을 읽어도 주마간산으로 읽는다면 한 권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나는 책 한 권을 깊이 읽으며 어떤 큰 깨달음을 얻거나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마다 산에 오르거나 마라톤을 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라고 보면 된다. 내게는 책이 산이고, 마라톤이며, 여행이었다. 열심히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하다가 어느 날 답을 찾듯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구하는 답도 얻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기나긴 도전을 위해 일상을 통제했다. 먼저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 야행성인 내가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 5시 경에 일어났다. 모임이나 만남은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TV도 전혀 보지 않았다. ‘공표의 효과’를 얻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되돌아와, 오히려 그것이 오기를 키워주었다.
그렇게 꼬박 1년 동안 날마다 책을 읽었다. 노트를 옆에 놓고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베끼고 양이 많은 것은 복사를 하면서 읽었다. 이 노트가 13권이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블로그에 리뷰를 남겼다. 365권에 대한 리뷰를 모두 썼다. 읽는 것으로도 벅찬데, 2~3시간 걸리는 리뷰까지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얇은 것을 읽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300페이지 전후의 책이 많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계속 읽어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는 점이다.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인 것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당시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고, 두 딸은 고등학생이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 일주일에 이틀을 제외하고 5일 동안 수강하는 강좌가 있었다.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들었다. 비교적 큰 수술을 한지 한 달 정도 밖에 안 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잠자는 시간은 많아야 5시간, 적으면 서너 시간이었으니 어떤 날은 머리가 지끈지끈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몸은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목표를 이뤄가면서 성취감이 생겼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에 신이 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답을 얻어야겠다는 것보다는, 읽고 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하루가 모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더니 일 년이라는 시간도 왔다. 신기하게도 일 년이 가까워질 무렵에 답을 얻었다. 그것은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고생한 대가로 치기엔 답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면 어떤 일을 하든지 진정성 있게 해 낼 수 있을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 못 얻었어도, 힘든 과정을 견디면서 얻은 희열이 있었고, 책과 교감하는 기쁨을 충분히 누렸으므로 대만족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상승하며 나 스스로에게 감동을 했다.
그리고 바로 결과를 얻지 못한 것 같지만 읽고 쓰는 동안 내 문장력과 통찰력은 계속 높아졌다.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이 되는가 하면, TV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을 쓰는 여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나는 50대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갈 수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책을 2권 출간하였으며,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도전이라 할 수 있는, ‘1년 동안 365권 읽고 리뷰 쓰기’는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런 도전은 단 한번으로도 족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