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꽃
일본을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화가이자 현대 미술의 선각자인 오카모토 타로는 예술이 가져야 할 기본 조건을 다음 네 가지로 말했다.
산뜻해서는 안 된다.
혐오스러운 것이다.
깔끔해서는 안 된다.
솜씨가 좋아서는 안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연을 그린 풍경화나 누드, 정물화 등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그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데 진정한 예술은 반드시 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긴장감을 강요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양과 지식만으로는 판단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그 속에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불안감마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실물을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 앞에 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뿐이다. 그런 그림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아 감동이 전해오지 않기 때문이다. 타로가 말한 예술의 기본 조건과 정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산뜻하고, 깔끔하고, 혐오스럽지도 않다.
혐오스러워서 보는 이의 감정을 압박해오는 그림이라면 윤석남의 그림에도 많다. 툭 튀어나온 긴팔,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네, 푹신한 쿠션 대신 날카로운 쇠가 곳곳에 박혀 있는 의자, 나무에 갇혀 있는 여인들, 심각한 표정 짓고 있는 개 조각 등 모두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윤석남은 억울하게 고통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버려진 개들까지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가난이나 폭력, 차별로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을 그렸기에 페미니스트 화가로 유명하다.
《나, 화가가 되고 싶어!》는 윤석남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이 책 표지에도 쭉 뻗은 긴 팔에 붓을 든 여성이 그려져 있다. 공부보다는 온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윤석남은 나무에 올라타고, 헤엄을 치면서 놀았다. 강둑에 누워 꽃과 풀과 하늘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 서재에 종일 틀어박혀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도 한 석남은 어느 날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이 신이 나서 외쳤어요.
어쩌면 화가가 될지도 몰라…….
어쩌면 화가로 성공할지도 몰라…….
몰라. 몰라. 성공하든 못하든
그러나 현실은 석금이 원하는 길로 데려가주지 않았다.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딸을 낳고 엄마가 되자 아기 돌보는 일이 더해졌다. 아이가 자라고 집도 넓어졌지만 석금의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마음 속 외침을 들은 석금은 자신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서경식 교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인터뷰 내용을 보면, 10년 동안 가족을 위해 산 윤석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편과 이혼하고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날 결심을 한다. 남편은 이혼은 안 되고 그림을 그리라며 독려한다.
윤석금은 그 길로 화실을 다니기 시작하고 마흔에 그림 그리는 길로 들어선다.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중년이 되어서 다시 썼다.
책과 미술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블로그 이웃이 되고, 친하게 된 홍미옥도 윤석금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화실에 다니기로 한다. 전날 홍미옥은 얼마나 설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화실에 다니기로 했을 뿐인데도 자신도 모르는 자신감이 생겼다.
5살 때부터 오빠들 공책 뒷면에 사람 그리는 것을 좋아한 홍미옥은 예쁜 치마와 바지를 입은 여자 아이들을 그렸다. 아버지가 오빠에게 핀잔 듣는 것을 보셨는지 퇴근길에 켄트지 200장을 사서 캐비넷에 넣어주었다. 오빠들은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홍미옥은 물 만난 듯 그림을 그렸다. 한 장에 스무 사람을 그리기도 했다. 공책 표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잘 그려졌다. 종이가 좋아야 그림도 잘 그려진다는 그때 알았다.
우리 세대가 자랄 때는 종이 인형놀이가 인기였다. 홍미옥도 처음에는 문구점에서 산 종이 인형으로 놀았다. 나중에는 직접 만들었더니 친구들이 파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대학에 가서도 인형 놀이를 즐길 것이라 생각했다.
홍미옥의 그림은 환경 미화 때 뽑히는 단골 그림이 되었고, 미술 대회 때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미술부에 들어갔으나 아버지가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고 했다. 말 잘 듣는 홍미옥은 반항 없이 공부를 했고 실력도 좋았다. 그때부터 그림이 홍미옥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쓴 ‘여덟 살의 꿈’이라는 글이 페이스북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는 〇〇초등학교를 나와서/국제 중학교를 나와서/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내가 하고 싶은/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그러니까 홍미옥도 ‘얌전히 공부나 하라’고 해서 별 저항 없이 그림을 그만 두었다. 속으로 언제라도 그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 불씨는 가슴 밑바닥에 그대로 숨겨져 있었다.
성격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에니어그램에서는 중년이 되면 접혔던 날개가 펴진다고 한다. 유년, 청소년 시절엔 가정이나 사회적 영향으로 억눌려 있던 꿈을 중년이 되면 펼치게 되는 것이다. 윤석금도 홍미옥도 중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림과 마주 대하였다.
심지어 가장이었던 홍미옥의 아버지도 40대 때 검찰 공무원직을 그만 두고 그림을 그렸다. 입상도 하고 전시회까지 열었다. 홍미옥에게도 아버지 피가 흐르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는 대목이다.
홍미옥은 20년 가까이 유화를 그렸다. 유화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분야이다. 미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서양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미술관을 자주 다니고 있다. 보기 전과 후에 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그림 실력도 높아진다.
홍미옥의 식탁과 그 주변 공간은 그녀의 작업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젤과 캔버스 그리고 화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식탁은 아예 작품들을 전시하는 한 뼘 갤러리가 되었다.
홍미옥은 골방에서 혼자 그림 그리고 혼자 감상하는 수준이 아니다. 소속된 단체는 없지만 다른 화가들과 소통하고 교류한다. 한일국제교류전에서는 특선으로 입상하여 도쿄도미술관에 전시되는 영광도 누렸다. 서울메트로미술대전에서도 서양화부문에서 입상하였다. 한불아트페스타에도 참여하고 국내외 단체전은 30회 가졌다.
외동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홍미옥은 허전함에 못 이겨 그림을 스마트폰에다 그리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요란하게 쏟아지던 날, 짧게 깎은 머리 뒤 꼭지를 보이며 사라진 아들을 그린 것이 첫 작품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미옥과 남편은 눈물지었다. 그림이 그리움을 불러오며 마음까지 달래준다는 사실을 체험하자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린 폰그림을 블로그에 올리고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유화처럼 자리를 차지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쓱쓱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요즘엔 유화보다 스마트폰 그림에 더 빠져 있기도 하다.
도쿄에서 규방공예가와 또 내 책과 함께 콜라보 전시를 갖고, 진보초에 있는 한국 책방 책거리에서도 콜라보 전시를 했다. 그리고 나는 북토크를, 홍미옥은 체험 시연 강의를 했다.
한 일간지 기자가 그녀의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림도 좋지만 그림을 풀어내는 글맛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중년에 환승열차를 잘 갈아탄 사람들을 필진으로 하는 섹션에 연재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에세이를 쓰는 그림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현재 홍미옥은 나와 규방공예가와 셋이서 동네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콜라보 전시와 강의를 하고 있다.
홍미옥은 우리네 삶을 그린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마음을 툭, 하고 건드리는 것이 있으면 폰을 꺼내 쓱쓱 그린다.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것에서다. 그것을 볼 줄 아는 힘,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힘, 홍미옥의 감성이다. 그러니까 어떤 광경을 보더라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았던 포인트 지점과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새로운 풍경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다. 그걸 보는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꾸 물을 주다보면
호박꽃은 필 거야
그러면 어느 날 아침 한때
나, 호박꽃 주위에서 붕붕거리는 한 마리 벌이 될지도 몰라
세상 속으로 뚫린 귀가 있다면
두두둥 둥둥둥 두둥두 둥둥두둥
호박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을 거야
- 안도현, ‘나의 희망’에서
대충 키워도 잘 자라는 식물들도 우리 집에만 들어오면 다 죽어나가서 오래 전부터 화초들을 사지 않는다. 그래도 남아 있는 화분이 네 개 있다. 그 가운데엔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작은 선인장이 있다. 흔한 선인장이기도 하고 늘 둥그런 몸통에 가시만 달려 있는 모습이어서 특별히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어쩌다 물주는 것 외엔 말이다.
그런데 작년인가 붉은 꽃 두 송이가 피어 있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기해서 사진 찍어 남편에게도 보내고 앨범에도 저장해두었다. 얼마 안 있어 꽃이 지자 예전처럼 다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또 다시 꽃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별로 자라지도 않고 늘 그대로인 것 같은 작은 선인장이 붉은 꽃을 피워낸 게 하도 신통해 자꾸 베란다로 간다. 선인장이 사람이거나 강아지였다면 한참을 쓰다듬어주고 끌어안았을 것이다. 늦게 피워낸 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열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견하기 그지없다.
사노 요코의 《백 만 번 산 고양이》에 나오는 얼룩 고양이도 사랑하는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백 만 번이나 죽고 백 만 번이나 태어났다.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하고 자녀들을 낳은 뒤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얼룩 고양이는 처음으로 큰 소리로 울었다. 얼마 후 이 고양이도 죽고 말았는데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윤석남이나 홍미옥이 붓을 잡은 것은, 숨죽은 듯 있었던 선인장이 가시 뚫고 꽃을 피워낸 것과 같다. 백만 번 산 고양이와 다름없다. 자신들의 꿈을 묻어두지 않고 중년에 꺼내어 한껏 펼쳐내고 있는 그 모습들이 아름답다.
윤석남에게 그렇듯 홍미옥에게도 그림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한 속에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으니 마냥 행복하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잘하고 또 좋아했던 것으로 중년의 여정을 꾸미고 있으니 자신이 느끼는 풍성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홍미옥은 잘 하려고 애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경을 자신의 눈으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빛깔로 그려내고 또 쓰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꽃도 피고, 벌도 날아오고 있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