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잇다/사람을 잇다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줄기가 그의 머리를 적시고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흘러 내려도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 안도현, <모과나무>에서
처마 밑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리는 화자는 온몸이 다 젖도록 그대로 서서 비를 맞는 모과나무를 본다. 왜 바보처럼 비를 피하지 않느냐고, 그는 모과나무에게 묻고 싶은 거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이 젖을까 봐 품에 꼭 껴안고 다니는 아저씨에게 ‘우산’은 무엇일까?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 행동이 과연 그림책 속 아저씨만의 일일까? 나는 남편이 전부터 가슴 속에 깊이 품고 있는 꿈 하나가 바로 ‘아저씨의 우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어도 필요한이 것 없다 한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값 비싼 시계나 반지, 지갑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다. 사업 상 업체 사람들과 골프 치러 갈 때도 골프복이나 골프 기구에도 별 관심이 없다. 좀처럼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인데 가끔씩, “내 꿈은 거지처럼 하고 외진 곳 여행 다니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전에는 ‘거지처럼’이라는 말이 싫어서 뭐라 했는데 지금은 그냥 놔둔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같이 본 적이 있다. 동남아에 있다가 귀국한 어떤 남성이 노숙 생활을 하다가 중국으로 떠나는 배를 탔다. 그는 서울 역 노숙자였지만 외모는 단정히 했다. 다른 노숙자과는 다르게 아침이면 공중화장실에 가서 씻고 옷도 깔끔하게 입었다. 낮에는 흙을 구워 만든 피리를 팔아서 콩 과자를 샀다.
중국으로 떠나는 배 안에서 콩 과자를 꺼내 한 끼 먹을 양으로 나누는데 그것이 18개였다. 중국으로 도착한 그는 어느 외진 마을에서 방을 얻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발을 해주었던가 하면서 돈을 번 것도 같다.
그 남자가 배를 타고 떠날 때 남편이 몹시 부러워했다. 중국 외진 마을에 거처를 마련해 생활하는 모습도 부러워했다. 콩 과자를 나누는 모습조차 남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이 ‘거지같이 하고서 여행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 남자의 여정이 부러워서 그리 말한 것인데 속마음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은 것일 게다. 당장이라도 그리 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에 ‘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연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남편에게 그 프로그램을 보라고 알려줬다. 그러나 남편도 나도 처음엔 신기한 듯 보다가 방송 편집이 너무 똑같아서 시들해져 안 본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를 다니다가 굴을 발견하면 전에 없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 찍어 달라 한다. 평소 남편은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나서서 브이자까지 해 보이면서 찍어 달라 한다. 굴속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거지 여행자와 닮았다.
시월에 다시 갔을 때 오이 덩굴은, 오이가 커질 대로 커지고 누렇게 되어, 속이 문드러지고 떨어질 때까지도 자신의 잎사귀들을 지켰다. 오이에게 먹일 수분과 영양분을 옮겨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혼자 지내니 주말이나 공휴일에 거지 여행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편은 그런 여행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가끔 남편은 “일본에 오지 않았으면 우리 굶어죽었을지도 몰라!” 라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 공휴일에 혼자 있다 해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남편 어깨엔 오이 같은 가족이 매달려 있으므로 거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거지’라 말하는 것이 꼭 그 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숙자처럼 자신 말고는 책임질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그림책 속 아저씨는 이제 비에 젖은 우산을 여유롭게 바라본다. 아이 둘이 우산을 함께 쓰고 ‘또롱또롱 또로옹 참방 참방 참―방’ 하면 노는 것을 보고 용기 내어 우산을 펴보기로 한다.
아저씨가 마침내
우산을 펼쳤습니다.
크고 멋들어진 우산이 거짓말처럼 활짝 펴졌다. 두 페이지에 걸쳐 우산이 크게 그려져 있는 모습이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이 때 아저씨 마음도 활짝 펴졌을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한번 적셔보고서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하면 노래 부르며 가는 것을 보며 그 커다란 우산을 이따금 젖은 우산을 보러 나가기만 할 뿐 젖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처마 밑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리다가
가지 끝으로 여리게 어린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모과나무도
처마 밑으로 걸어 들어왔을 것이다.
- 안도현, <모과나무> 가운데
남편도 훗날 일에서 물러 나 정말로 아무 걱정 없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오면 훌쩍 떠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기 전에 용기 내어 작은 ‘거지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나와 우리 아이도 이제 어린 모과가 아니니 안심하고 처마 밑으로 걸어 들어와도 되니까 말이다. 떠나보면 남편도 알 것이다.
“여보, 지금 한번 떠나 봐요, 시간은 냉정해서 오래 기다려주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