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에도 지지 않고

그림책이 잇다/ 사람을 잇다

by 김건숙

우산을 펴세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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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공항에 있었다. 도쿄에 있는 친구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는 우박을 찍은 것이었다. 곧 이어 남편도 사무실 테라스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역시 우박이었다. 남편과 직원들이 놀라워하는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실시간 동영상이었고, 이 날이 7월 18일이었으니 누군들 안 놀랄까.


도쿄로 가서 뉴스를 보는데 그 날 떨어진 우박이 골프공만 했다. 도쿄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이 광경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서울 한 복판에도 천둥 번개와 함께 우박이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래도 5월이었다. 7월 중순에 우박이 떨어지다니 말이 되는 가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아침에 일어나 앉아 뜰을 보고 있었다. 도쿄에 있는 남편 거처에는 손바닥 만 한 뜰이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남편이 꽃이나 채소들을 심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얻는 곳이다. 가지나 딸기, 방울토마토, 대파 같은 채소들도 모두 관상용으로 키운다.


갑작스레 쏟아진 우박으로 수국 잎들은 찢어졌고, 작약은 목이 꺾이고 말았다. 덩굴로 올라가던 이름 모를 식물도 시들어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청청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었으니 오이 덩굴이었다. 덩굴을 눈으로 따라 가 보니 오이가 달려 있었다.


‘그랬구나, 오이가 있어서 덩굴이 우박에도 죽지 않고 저리 버티고 있었구나!’
라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이가 더 강한 식물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모습을 보노라니 오이 덩굴이 남편으로 보였다. 오이는 나와 딸들 같았다. 남편이 도쿄에서 홀로 외로움 견디며 지내고 있는 것도 그 오이덩굴처럼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 남편이 더욱 짠하게 느껴졌다.


일본 무역 회사가 첫 직장이었던 남편이 그 보다 좋은 조건으로 독일 회사 지사로 옮기고 나서 곧 바로 외환 위기가 닥쳤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그만 두어야 했다. 자신을 스카웃해 간 사람과 같은 부서였으니 남편이 관두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침 중국 시장이 열리고 있던 때여서 많은 한국인들이 앞 다투어 진출했다. 하루 아침에 직장 잃은 남편도 아무 경험도 없이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무지개 꿈을 꾼다. 답사 다녀왔을 때만 해도 남편은 자루에 돈을 마구 쓸어 담아 올 듯 했다. 허나 그 반대였다. 한국에 있는 돈을 들어붓다시피 할 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바닥은 빨리 났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결국 빚은 빚대로 지고 정리는 하나도 못한 채 그대로 두고 돌아왔다. 그 뒤로 한 중소기업의 CEO로도 있었고, 현대 계열사에도 다녔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은 외국계 보험사였다. 평소 말수도 적은데다 말주변도 별로 없는 남편이 계약을 따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져보니 8년 정도 돈을 안 가져왔다. 생활비는 내가 책임지고 있었고, 보험과 아파트 대출금은 남편이 책임지기로 했었다. 내가 버는 것으로도 생활비 충당이 안 될 때는 대출을 받기도 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어찌어찌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나고 보면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시기였지만 당시엔 잘 몰랐다. 정 안 되면 아파트 팔고 시골로 이사 가면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 힘든 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 오히려 약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 남편에게 기회가 왔다.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한 해 동안 남편을 눈여겨보았던 가보다. 그 친구는 모르는 동창이었는데 성실하기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남편을 알아본 것이다. 친구는 자기 회사의 일본 지사장으로 가 있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남편은 지사장이 아닌 자신의 법인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2012년 1월에 도쿄로 넘어갔다. 그때부터 가족과 떨어진 삶이 시작되었다.


빈손으로 갔는데 인덕이 있었는지 안면이 있는 일본인들이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자신들 이름으로 은행 대출이며 사무실 임대, 사무실 집기까지 마련해주어서 시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지금은 직원들도 여럿 있고, 사무실도 넓어지고, 매출도 제법 안정 궤도에 올라와 있다.




아저씨우산.jpg 사노 요코 글, 그림/김난주 옮김/비룡소



“어머, 우산을 다 쓰셨네요, 비가 오는데.”


<아저씨 우산>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문장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고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 쓰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놀라고 있으니 말이다.


영국 신사처럼 늘 신사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는 아저씨에게는 멋진 우산이 있다. 외출할 때면 아저씨는 반짝반짝 빛나는 지팡이와도 같은 우산을 들고 나섰다. 남자들에게는 자동차나 시계, 지갑, 벨트 등이 중요한 패션이라고 하는데 아저씨에게는 우산이 최고의 패션이오, 단짝 친구이다.


둥그런 나무 손잡이에 늘씬하게 빠진 검은색 우산을 얼마나 아끼는지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는 아저씨는 그냥 젖은 채 걸었다. 우산이 젖기 때문이다. 빗발이 더 굵어지면 처마 밑에서 그치기를 기다렸다. 길을 서두를 때는 꼭 껴안고 갔으니 누가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시간이 흘러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우산을 씌어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비가 좍좍 내리는 날에는 아예 집 안에 있다. 그림책에는 계속 ‘우산이 젖기 때문이에요.’라는 말이 반복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소중한 것을 떠올리거나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초점 맞추어 말한다. 사노 요코 선생도 그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세찬 우박에도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잎을 세우고 오이를 지켜내고 있는 그 덩굴을 보았을 때 남편이 떠올랐다. 그 다음엔 <아저씨 우산>이, 마지막으로는 안도현의 <모과나무>가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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