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앞머리

딸 초등 6년~중1 때 함께 쓴 교환일기(2008~2010년)

by 김건숙

사랑하는 유민아!

오늘은 우리 딸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가치’란 다른 말로 바꾸면 ‘중요한 것, 쓸모 있는 것’을 말하지. 유민이가 수첩을 좋아하는 것은 수첩이 유민이에게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 ‘가치’ 가운데 ‘신중함’과 ‘책임’에 대해 말하고 싶구나.

《정글북》이라는 동화에는 ‘작고 귀여운 아이’란 뜻을 가진 ‘모글리’라는 남자 주인공이 있어. 아기 때 늑대 가족에게 발견되어 그곳에서 같이 살게 되는데, 원숭이가 똑똑한 모글리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일 속셈으로 과일도 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지. 모글리는 스승인 바루의 충고도 무시하고 원숭이와 어울리다 그만 원숭이들에게 납치되고 만단다.

그때 모글리가 좀 더 신중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야. ‘신중함’은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판단해야 할 때 필요하단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는 무엇이 따를까? 그래, 바로 ‘책임’이야.

오늘 유민이가 언니에게 앞머리를 잘라달라고 하기 전에 어떻게 했어야 할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전에도 한 번 언니에게 부탁해 놓고 밉게 잘라줬다고 네가 무척 화냈던 것 기억나는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머리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너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유민이가 언니한테 잘라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맘에 안 들더라도 받아들여야 했어. 그것이 바로 ‘책임’이야. 유민이가 원했던 거니까 좀 화가 나도 참았어야 했다는 말이지. 언니는 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잘랐을 테고, 일부러 밉게 깎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엄마를 화나게 한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일이 두 번째 일이라는 사실이야. 우리는 인간이기에 한 번 경험한 것에 대해 뒤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번 일을 계기로 중요한 일일수록 더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유민이는 현명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믿어. 속상한 일이 있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르르 엄마에게 달려오기 전에 조금만 생각해봤으면 해.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 기분이 좀 그랬어.








© shimikumi32, 출처 Unsplash



사랑하는 엄마께


저도 일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상했어요. 알겠어요.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할게요. 저도 동물도 아닌 인간이라서 요번 계기로 깨달으려고요. 제가 앞머리 자르고 보니깐 자연스럽게 예쁘더라고요.

아, 전 다크서클만 없으면 더 이쁠 텐데……. 나도 예뻐지고 싶다.

오늘 중앙동 가서 반지 사고 바로 왔어요. 잘했죠? 어제 백화점에서 스키니진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서 꿈속에도 나온 것 같아요. 저는 백화점 같은 약간 비싼 데 가면 마음이 조금 이상해지고 홈플러스 같은 데가 나은 것 같아요. 저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더 살 게 있어서 홈플러스 가면 안 돼요? 죄송해요.

그리고 예전보다 제 영어 실력이 더 나아진 것 같아요. 이건 다 엄마의 노력 덕분이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설렁탕집에서 맛있게 먹을게요. 엄마 감사합니다. 제가 엄마 많이 사랑하는 것 알지요?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만 짧게 쓸게요. 사랑해요.

마미를 사랑하는 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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