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는 자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

그녀가 사랑할 때


단 한순간 온전했던 사랑의 기억만으로 숱하게 불온전한 날들을 묻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날, 평소와 다름없던 날,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손을 마주 잡는 것만으로 온전함을 느낄 수 있었죠.
이 순간이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을 수 있는 기억이 될까요?

















사랑에 빠진 자는 사랑 하는 이를 두고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그 순간부터 자신을 멈춰 세우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린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벌써 십수 년이 더 지났건만, 그녀의 시간은 어린 자녀를 떠나보낸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와 함께 성장한 아이를 보지 못한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여전히 어린 자녀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여자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어른이 되었건만, 그때의 오빠보다도 더 큰 키로 자랐건만 여전히 기억 속의 그 꼬마 아이를 오빠로 대우해줘야 하는 상황이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어째서 모든 시계가 그 사건을 중심으로 멈춘 듯 행동하는 걸까? 이제 부재에 익숙해질 때도 됐을 텐데 여전히 그 꼬마 아이와 같은 시간에 머물러 있는 어머니가 못마땅하다.


그 꼬마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무렵엔 지금보다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질투에 휩싸였다.


'날 좀 봐줘. 나도 이렇게 자랐잖아. 나는 안타깝지 않아? 외면받는 나는 슬프지 않아?'


차라리 죽은 것이 자신이었다면.

몇 번이고 바랐다.

그랬다면 어머니가 머물러 있는 시간은 자신이었겠지.

그런 점 마저 질투를 하며 자신이 죽기를 바랐던 시절도 있다.

눈을 뜨면 자신이 먼지처럼 흩어져 있길 기도하며 잠들었다.


아무리 무언가를 잘해도 어머니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 어떤 상장을 가져와도 슬퍼한다.

예쁜 말들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도 어머니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당신을 끌어내리는 무게추를 제거할 수가 없다.

가장 사랑받고 싶은 대상에게서부터 단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처절하게 느껴지는 무력감.

종종 그녀를 엄습하는 어찌할 수 없는 우울함과 손하나 까딱할 수 없도록 뼛속 깊이 파고드는 무기력함은 아마 여기서 기원했으리라.

여자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상황까지도 자신을 감싸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로부터 점차 기대를 죽여가는 법을 배워갔다.

모든 것에, 정말로 '모든' 것에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기대란 걸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내 일도 기대할 수 없고, 내일도 기대할 수 없어.'


그리고 습득했던 감정은 '분노'다. 여자는 지금까지도 슬퍼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는다.

어머니에 대한 이해를 포기했다. 지겹다. 그리고 한심하다.

여자는 지난날에 붙잡혀 사느라 살아있는, 현재 함께할 수 있는 자신을 놓치고 있는 어머니가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이별에 붙잡혀 있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대단한 남성 편력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의 외모와 젊음을 이용해서 남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욕구를 만족할 때까지 두루두루 남자들을 사귀었다.


여자는 만나면 그 누구보다 잘해주지만, 연락은 뜸하다. 그런 점이 더욱 남자들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동시에 네 명정도를 만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네 명 중 두 명은 자신의 커리어를 끌어줄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 사실 가장 그녀가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는 남자들이 바로 그 두 명이다.

이 역할을 맡은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항상 동일했다.

다리와 품을 벌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감싸 안아 줄 것.

상대가 그의 존재 자체로 수용받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녀의 전문분야였다.

그들에게 때로 기대기도 하며,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대고 있는 그녀에게 남자들이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며 그녀가 원하는 위치로 자신을 끌어올려줄 남자들에게 굴복하고, 굴복시켰다. 그녀에게 이 역할을 해주었던 남자들은 몇 번이고 바뀌었지만 그들을 통해 쌓아 온 커리어는 여자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헤어져도 헤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들이 자신에게 기여한 것이 그녀의 인생에 남아있지 않겠는가?


그녀의 철칙은 단 하나다.

만나는 시간에는 현재 만나고 있는 대상에게 충실할 것.

따라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녀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여자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니까,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어떤 시간에도 종속되어있지 않았다.

때문에 시간은 그녀를 쏜살같이 흘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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