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감정 사용법

김혜남, 박종석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큐레이션

감정이 활개 치도록 하되, 감정에 대한 조절의 끈을 놓지 말라.
_크리스토프 앙드레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 감정에 휩싸일 수 있으며, 감정적 행동으로 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만큼 감정의 힘은 강렬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날뛰는 감정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우리는 감정에 굴복해서도 안되지만 무조건 억압해서도 안 된다. 감정이라는 마차의 마부가 된 듯, 때로는 달리는 감정의 고삐를 잡고 속력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천천히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여행하듯, 조절하며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은 소통 기능을 가진다. 스스로와 주변에게 ‘나의 상태‘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아이는 사실 “사랑받지 못해 너무 속상하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우는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슬퍼야 할 상황에 눈물이 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상대의 감정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감정은 하나의 기능이고 적응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 반드시 느껴야만 하는, 혹은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이란 없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좋고 아름다운 감정뿐 아니라 치졸하고 야비하게 느껴지는 감정들도 있다. 때론 나의 감정이 스스로 무서울 정도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있다고 해서 감정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살인적 분노를 느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잠 못 이룰 수도 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도 좌절과 절망에 빠져 우울해질 수도 있고, 열등감에 분노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감정은 찾아온다. 진짜 나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꼈을 때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감정을 억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과 대립하기 시작하면 감정은 안에서 쌓여 자신을 괴롭힌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인생이 뒤집히는 일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도 우리는 “감정”의 탓을 한다. “내”가 감정을 억압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깨닫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쁜” 감정이란 없다.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이다. 감정은 외부 혹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해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좌절하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일뿐이다.


분노는 부당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감정이고, 공포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반응이다. 슬픔은 중요한 대상을 상실한 것에 적응하기 위해서 느끼는 것이며, 시기나 질투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쟁심에서 나온다. 불안은 어떤 무서운 일을 예고하고 대비하기 위한 반응이다. 기쁨, 행복, 즐거움, 환희, 만족과 같이 좌절, 절망, 두려움, 공포, 쓸쓸함, 슬픔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다 정상이며 정당하다.


단지 어떤 감정이든 그 정도가 지나쳐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 감정을 해결하려면 그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먼저다. 감정이란 것은 너무 과하면 자신마저 태워 버린다. 누가 죽도록 미우면 그 미움으로 나를 망가뜨리게 된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못한다.


당신의 감정이 어떤지 알고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화가 날 때는 자신의 화와 마주하며 그 화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화를 적절히 풀지 생각할 수 있다. 부당한 일로 화가 났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도, 내가 상처 입지 않도록 보호할 수도, 상대에게 내가 화났음을 알려 조심하게 할 수도 없다.


모든 감정은 어차피 한 번 일어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러지게 되어 있다. 오히려 막으려 하면 더 거세질 뿐이다. 시냇물처럼, 바람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두면 된다. 그러면 점차 감정은 수그러들고, 그 이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 해서 감정이 고양되는 대로 마구 분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분별없는 배설이나 다름없는 감정의 분출은 우리를 격정에 더 머무르게 한다. 그렇게 되면 흥분된 몸과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화가 화를 부르고 미움이 미움을 강화하게 된다. 감정은 스스로 증폭하는 특성이 있다. 감정과 사고는 서로 자극하며 유발된다. 우울하고 화가 날 땐 그간 있었던 억울하고 화났던 일들이 계속 떠오른다. 그리고 급기야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폭발 직전까지 가게 만든다. 이쯤 되면 애초에 처음 화났던 이유는 중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화가 나거나 억울한 감정이 들면 감정을 정리하고 한 번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며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정적 감정은 제때 풀고 표현해 주어야 한다. 생각을 돌리는 것처럼 감정도 의지로 충분히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상처받는 것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가까운 사람이 던진 별 뜻 없는 한 마디에 밤새 잠도 못 자고 두고두고 견딜 수 없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도 같은 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줘왔음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어쩌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나의 감정이 소중하듯 타인의 감정 또한 소중하다. 감정의 원래 기능 중 하나가 소통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감정은 누군가의 공감을 필요로 한다. 나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내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표현하여 알려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하고, 타인의 감정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최소한의 상처를 주고 서로 감정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며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은 원만하고 깊은 관계에 필수적 요건이다. 누군가 나의 눈을 들여다보고 나의 외로움과 슬픔에 함께 공감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타인 역시 그걸 절실히 원하고 있다. 내가 상처받는 만큼 상대도 상처받을 수 있는 예민한 존재이다. 오늘만큼은 너무 나의 감정에만 몰두하지 말고 타인의 얼굴과 눈빛을 잘 들여다보자. 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고 해 보자. 이런 노력을 통해 서로에게 불필요한 감정의 충돌은 피할 수 있으며, 공감이 주는 따스한 미소로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