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필 이 유형일까?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에니어그램의 지혜> 큐레이션


어릴 때 인기가 많았던 아이는 그 경험을 통해 일생동안 자신이 계속해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믿는다. 어릴 때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는 그 경험을 통해 일생동안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어렸을 때 수줍음을 많이 탔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자신을 ‘수줍음 많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실제 경험에 기초해서 자신을 파악한다.


“난 똑똑해.”
“난 활발해.”
”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
”난 어디서든 무시받는 사람인가봐.”
“난 인정받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야.”



자신의 대한 이야기는 흔히 아동기에 만들어져서 잘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의 현실을 반영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유년기에는 자신을 때리는 부모를 보고 자신이 나쁜 아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내가 의지하는 부모가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마음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처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부모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아이는 부모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꾸며내기 시작한다. 진실을 파헤치지 않고 부모의 부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핵심믿음은 자신과 주변 관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쌓아 올린 수많은 이야기의 총합이다. 애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답장을 받지 못할 때의 불안한 감정은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부모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상기시키며 증폭된다. 절망에 빠져 비이상적으로 될 때, 사랑받지 못한 다고 느껴질 때마다 유년기의 외로웠던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끝내지 못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지금의 상황으로 끌고 와 지속해서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런 순간들이 항상 극적이진 않다. 부모님이 늦게 퇴근하거나, 어머니가 나의 요구를 외면했거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의 일이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당신에 대한 믿음을 형성했을 수도 있다.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와 같다. 그리고 믿음을 강화하는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 렌즈 위에 필터가 하나씩 끼워지는 것이다. 특정한 방향으로 몰두하게 될수록 믿음은 강화된다.



특히 사고가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미주신경을 활성화하게 되면 쉽게 강박적으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감정 중독이다. 특정한 생각, 경험을 곱씹을수록 뇌는 신경계와 온몸의 세포 화학작용을 바꾼다. 즉, 뭔가를 집착적으로 생각할수록 그것을 믿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렇게 거듭 쌓아 올린 생각은 대게 진실이 된다.


믿음이 반복적으로 검증된다면 핵심믿음이 된다. 이 핵심믿음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뿌리 깊은 인식이다. 자신의 믿음으로 만든 이야기들이 자신의 ’ 성격’의 틀을 잡아준다. 핵심믿음은 자신이 쌓아 올렸기 때문에 자기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대부분 부모와 가정, 공동체, 인생 초창기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핵심믿음은 트라우마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한 핵심믿음에 의해 우리는 확증 편향을 갖게 된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믿음과 상충되는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승진을 해도 뭔가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우연하게 실수를 했을 때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쓸모없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신호들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실적은 저평가하고 곧 까먹지만, 타인에게 들은 비판은 깊게 박힌다. 유명인들이 100개의 선플에 있던 칭찬은 금세 잊어도 그중 단 1개의 악플을 절대 잊어버리지 못하는 원리도 이와 같다.



엄마를 도와 형제자매를 돌보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네가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들을 돌봐야 한다’는 핵심믿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자신을 챙기거나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조차도 이기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러면 아이는 가족 안에서 자신을 희생해야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런 식의 믿음이 지속적으로 형성된 사람이 바로 에니어그램 유형 2번이다.


혹은 어린 시절에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받거나 어떤 일을 잘했을 때만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면 아이는 스스로의 만족보다는 인정받는 그 역할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며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이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한다. 격려처럼 보이는 “넌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도 이들에게는 축복이자 저주의 말이 된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고 느낀다. 중요한 시험이나 대회를 앞두고 아픈 척하고 집에 누워 있던 적이 있는가?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이 아이는 에니어그램 3번 유형으로 자라게 되었다.


아이가 엄마로부터 독립할 때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건강한 아버지 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훈육과 권위, 체계를 제시하는 아버지 상이 강하고 일관적으로 존재한다면 아이가 독립성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안전하지 않은지 가르친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지원이 불충분하다고 느끼거나, 어머니에게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깊은 양가감정과 신뢰에 대한 불안을 갖는 에니어그램 6번 유형으로 자라게 된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삶은 불안하고 불안정한 것이며 자신의 생각조차도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은 외부에서 뭔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으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와 인정을 원하지만 동시에 그 관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6번은 아버지 상의 ‘권위’를 외부에서 계속 찾게 된다. 이들은 외부 적으로는 권위에 복종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반항, 냉소, 수동 공격 등을 통해 독립을 유지하고자 하는 양가감정의 불편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유연한 시기인 아동기에 스펀지처럼 흡수한 믿음들로 인해 부정적인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정확하고 완벽한 최신 이야기는 무시하면서 핵심 믿음을 계속 강화한다. 이렇게 진정한 자기와의 단절은 더 심해진다. 때문에 에니어그램에서 설명하는 성격 유형이란 바로 이러한 핵심 믿음으로 형성된 내가 착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저택을 부여받았는데도 지하실 작은 창고 속에 자신을 가둬 놓는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큰 저택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자신이 그 집의 주인인 것도 모르고 있다.


에니어그램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우리가 우리의 성격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격을 통해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핵심 믿음을 알아차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성격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벗어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의 본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우리는 바꾸게 되는 것이다.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어딘가 높은 곳으로 향하는 노력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내가 착각하고 있는 나에게서 벗어날 때 이루어진다.


가장 큰 행복은 불행의 근원을 아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모든 사람이 자신 안의 핵심 믿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타인의 관심을 원하고, 타인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외부에서 자신을 검증받으려고 한다. 자신을 검증받고 싶은 욕구는 의존성, 비위 맞추기, 강박적인 희생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완전히 정반대로 불안, 분노와 적대감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자신과의 단절이 심해지면 이는 우울증, 무기력, 혼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을 주변에게 더욱 강하게 투사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너는 필요한 사람이야.“
”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네가 원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너는 충분히 안전해.“
”넌 보살핌을 받을 거야.“
”너는 배신당하지 않을 거야.“
”너는 소중한 존재란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다양한 메시지를 들으며 우리 자신을 형성해 나갔다. 우리를 제약하는 메시지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우리가 꼭 들어야 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들어 보지 못했던 그 메시지는 내 삶의 중요한 문제가 되고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핵심을 형성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우리는 어릴 때 충분히 듣지 못한 ’잃어버린 메시지’를 타인으로부터 듣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당신이 잃어버린,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메시지가 필요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해 보자.

인간의 믿음은 강력하다. 놀랄 정도록 강력하게 잠재의식을 통해 형성된 믿음으로 일상의 경험을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핵심믿음은 하룻밤에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룻밤 사이에 변하지도 않는다. 헌신적으로 끈기 있게 시도해야 이 믿음을 바꿀 수 있다. 진정으로 변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하나가 당신 안에 있는 내면 아이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큐레이션에서는 에니어그램에서 이야기하는 내면아이, 소울차일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