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침묵』의 실제 배경인 나가사키의 소토메에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을 기리는 ‘침묵의 비’가 놓여 있고, 비문엔 이런 구절이 씌어 있다. 나는 이 구절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그래서 일본어로까지 외고 다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후에 구름 위 천년왕국에 입성하거나 땅 아래 불구덩이로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단지 예수라는 사람의 생애를 많이 존경할 따름이다.
〈사일런스〉(2016, 마틴 스콜세지)
『침묵』(1966)은 물론 스콜세지의 〈사일런스〉를 본 지도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제는 둘 중 하나를 다시 들여다볼까 하다가, 그냥 슈사쿠가 쓴 예수 전기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영화라면 몰라도, 책을 읽을 때엔 눈물을 흘린 적이 거의 없는데, 읽는 내내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
슈사쿠의 『예수의 생애』(1973)는 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겪어야 했던 고뇌를 유려한 필치와 정교한 역사인식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명저다. 신자이기에 앞서 소설가인 슈사쿠가 복음서의 행간에 숨은 진실을 읽어내며 사실의 공백을 채워 가는 방식은 더없이 인간적인 페이소스를 자아내면서도 매우 치밀한 설득력을 가진다.
일례로, 유다를 단순한 배신자로 취급하는 기존의 정설을 슈사쿠는 거부하는데, 예수와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 사이의 역사적∙사회적 동역학에 대한 간명한 서술이 슈사쿠의 해설을 반박하기 어렵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유다는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려 하는 과격파 유대인 민족주의자였고, 예수는 처음부터 그럴 의사가 없었다—“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원수를 사랑하라”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베풀어라”—는 게 슈사쿠의 해석이다.[1]
(※정지. 각주 1번을 읽고 나머지 글을 마저 읽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예수가 민중에게 버림받은 뒤에도 그를 끝까지 따라다닌 소수의 제자들 중 한 명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도 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는 예수의 시선이 당장의 일시적인 정치 캠페인보다 더 심오한 차원에 닿아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유다는 예수를 이해한 유일한 제자였을지도 모르고, 예수에 대한 그의 감정은 아주 복잡미묘했을 것이라고 슈사쿠는 말한다.[2]
그러고 보니 다자이 오사무도 유다에 관한 소설을 썼었더랬다(『직소』, 1940). 다자이의 소설에서 유다는 예수의 신성을 믿는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예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밀고한 뒤에 죄책감을 느끼는 미숙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다분히 통속적이고도 전복적인 성경 독해고, 그게 그 소설의 가치라면 가치겠거니 이제껏 생각해 왔는데, 슈사쿠의 책을 읽고 보니 그 소설의 가치는 유다의 진실을 예언적으로—사실은 매우 사후적으로—암시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성싶다. 아무래도 유다는 예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게 꼭 에로스를 동반하는 감정은 아니었더라도.
『침묵』은 『예수의 생애』보다 몇 년 앞서 쓰인 소설이다. 그사이에 슈사쿠의 세계관에 별다른 변모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 『침묵』이 무르익어서 『예수의 생애』가 되었다고 보면 어떨까. 유다에 대한 슈사쿠의 선해는 기치지로를 함부로 탓하고 비난하지 않는 그의 겸허한 마음가짐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하겠다.
아니다. 기치지로가 유다를 상징한다는 일반적인 해석도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침묵』의 주인공은 기치지로다. 페레이라와 로드리고까지 셋 다 주인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여하튼 로드리고나 페레이라보단 기치지로가 더 중요하다.
페레이라와 로드리고는 선교사다. 그들에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있다. 침묵하는 주님을 원망하고, 원망하면서도 뜻을 읽어낼 수 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주님을 배반하고, 배교조차 합리화할 수 있다. 유다를 닮은 이들은 차라리 이쪽이다. 기치지로는 도무지 믿음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에게서는 현실의 고달픔과 두려움이 항상 신앙의 진정성을 앞지른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주님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배신하고 등지고 만 것들의 주위를 끝없이 배회해야 한다. 부끄러움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며. 그마저도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못 된다. 기치지로는 자기를 끝까지 혐오할 수조차 없는, 적당히 뭉개고 살아가는 데 도가 튼 부류의 인간이다.
기치지로는 차라리 예수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우발적으로 스승을 배신하고 후회한 베드로나 나머지 제자들과 비슷하다. 그는 그저 예수의 곁에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물론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의 사후에 그의 가르침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들 마음속에 뒤늦게 되살아난 예수와 평생을 함께하며 복음을 알리다 순교한다는 점에서 기치지로와는 다르지만, 기치지로라고 하여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침묵』의 주인공은 기치지로다. 그건 평범한 우리 대부분이 예수보단 유다를,유다보단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을 닮은 탓이렸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모릅니다 모릅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
예수는 겁 많은 제자들이 자신을 모른 척했다고 지옥행 급행열차에 태워 보내 버리는 야박한 사탄마귀가 아니다. 유다도, 기치지로도 지옥에 있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뭐, 일단 지옥이라는 걸 먼저 믿고 볼 일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예수는 믿으니까.
각주
[1]
이러한 예수의 선택은 얼핏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예수가 결코 정치를 도외시한 어리숙한 센티멘털리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혁명이 결국에는 반동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니 현실에 순응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예수가 사랑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기득권을 질타하며 지엄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마태 19:24)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착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 10:34))
예수는 혁명이 영구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그러려면 지금 여기서 착취당하는 자들의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단지 억압하는 자들과 위아래를 바꾸려 들 뿐이다. 진정한 혁명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벌어질 구조적 폭력에 대한 분노에서 발생하며,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만이 불의에 대한 분노를 일깨울 수 있다.
예수의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를 아프거나 슬프지 않게 하겠다’는 온실 속의 사랑, 사탕발림 같은 사랑이 아니다. 예수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심오한 차원에 닿아 있다. 피안의 세계(천국)를 전제하는 비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의 영구적인 변화와 실천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심오하다. 예수는 가진 자에게도 못 가진 자에게도 한결같이 요구했다: 여기 고통받는 타인이 있다. 너는 그이를 외면하지 말라.
예수는 ‘내가 너를 사랑하므로 너에게 이 세계의 고통과 눈물을 알게 하겠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그 짐을 내가 나눠 들 테니 너는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저버리지 말라’고 절절하게 당부하는 것이다. ‘네가 설령 이 세상을 바꿔 보려다 실패하고 비참과 회한 속에서 쓰러지게 될지언정 내가 너를 알고 있으니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그건 발화된 언어가 아닌 침묵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소리다.
고통받는 타인이 있고, 고통의 조건을 구조화하는 사회가 있다. 모든 인간의 삶은 고통스럽지만, 누군가는 합리적으로 고안된 공고한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덜어내어 타인에게 전가한다. 피라미드의 웅장함에 감동받은 파라오가 삶의 비루함을 잠시 잊을 때, 벌거벗은 노예는 돌덩이의 무게와 채찍질의 쓰라림에 짓눌려 삶의 존엄을 상실한다. 다른 이의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는 노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체념하고 비굴해지고 만다.
예수는 항상 더 많이 고통받는 이들, 삶의 질곡에 끌려다니는 노예 같은 사람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었다. 예수는 편애하면서 겸애한다. 칼을 주면서 평화를 준다. 논리적으로는 모순일지언정 예수의 삶에는 모순이 없다. 삶은 논리를 초과하는 것이기에 삶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요컨대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지나치게 괴롭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결코 최선이 아니며, 항상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예수는 그것을 주려 하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타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지적 각성과 함께.
그리하여 예수는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사람다움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기입,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로 코딩하려 하였고, 그것이야말로 모든 실천의 기초가 되는 가장 정치적인 가르침이다.
우리가 왜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여기엔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논리 바깥에서, 그의 삶과 죽음 자체에서 오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바실리 페로프(1834~1882)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 1872년.
“만일 누군가 내 앞에서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님을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진리를 버리고 예수의 편에 서겠다”던 도스토예프스키의 결연함을 기억하자. 이건 내가 예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희생과 삶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예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마르크스도, 체 게바라도, 전태일도 이 땅에 도착하지 못했으리라. 만일 누가 내게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님을 증명한다면,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음 줄에 서겠다. 이 이상 자세하게 쓰는 건 이 글의 목적과 나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므로—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미 한참 많이 벗어났지만—이쯤에서 그친다.
[2]
제사장 카야파는 눈엣가시로 여기던 예수가 제 발로 예루살렘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분노가 두려워 함부로 처단하지 못하고 관망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하여 거룩한 희생을 결심한 예수는 정치적 캠페인의 구심점이 되어줄 수 없었고, 민중들은 또다시 그에게 등을 돌리고 만다. 카야파는 이 틈을 타 예수를 처형하여 가장 큰 위험요소를 도려내려 했고, 민중들에게 인기가 높던 ‘바라빠’의 석방을 예수의 목숨과 맞바꿔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다. 바라빠는 예수와 동명이인으로 알려진 인물로서, 유대 민족주의자 집단인 열심당의 주요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의 신병을 넘기면서 유다가 약속받은 것도 바라빠의 석방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슈사쿠는 또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다도 예수가 사형을 당할 줄은 몰랐을 거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