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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Jun 14. 2023

내 낡은 서랍 속의 패닉

『이적의 단어들』 서평

#김영사 #서평단


https://www.youtube.com/watch?v=LoQ08C_jiQg

이때의 이적은 참 개구쟁이처럼 생겼다.


이적의 비성은 매력적이다. 펑키하면서도 청량한 소리. 테너라기엔 묵직하고 바리톤이라기엔 쭉쭉 뻗는.


비음을 잔뜩 실어 노래를 부르던 패닉 시절의 그를 추억하기에 나는 조금 늦게 태어났고, 내가 태어나던 해의 이적, 젤을 덕지덕지 바른 삐죽머리를 하고 잔망을 부리던 시절의 이적보다는 부드럽게 볼륨을 넣은 댄디한 헤어스타일의 이적이 내게는 더 익숙하다.


이미지의 변화는 음악의 변천과도 보조를 맞춘다. 날것 그대로의 활력과 창의성이 통통 튀는 패닉 1집과 세기말의 불온함과 반항기가 진동하는 2집에 비하면 그 뒤 이적의 음악은 훨씬 정제된 느낌이다. 보컬리스트로서도, 후기 이적은 저음부가 두터워지면서 양감 있는 중후한 톤이 됐다. 고음부에서는 여전히 카랑카랑한 비성이 멋스럽게 새어나오긴 하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보컬 스타일이다.


지금 이대로도 이적의 디스코그래피가 훌륭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그래도 나는 천재성과 똘끼를 유감없이 드러내던 초기의 이적 음악이, 요망한 비성과 그루브가 그립다. 더 멀리, 아무도 못 간 길로 갈 수 있었던 뮤지션이 아니었나. 물론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은 아니지만...


(누가 김영하더러 ‘엇나가는 듯싶다가 때늦지 않게 철든’ 작가라고 시니컬하게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적에게 어울리는 수식어구인지도 모르겠다. 뮤지션으로서 이적의 재능과 성과가 작가로서 김영하의 그것보다 뛰어나고 독특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건 김영하에 대한 평가절하라기보단 이적에 대한 샤라웃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334648


‘작가 이적’의 신간에 대한 서평을 쓴답시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뮤지션 이적’에 관한 개인적 소회를 늘어놓고 말았는데, 나로서도 나름 할 말이 있다. 『이적의 단어들』이 내게 주는 인상이 그의 후기 음악과 패닉 1집을 대조할 때 느끼는 아쉬움과 비슷했던 까닭이다.


비슷하다고 말하고 보니 정확한 대비가 아닌 듯싶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유의 진한 맛이 일품인 이적의 후기 음악에 비해, 그의 책은 너무 가볍고 날아다닌다. 패닉 시절처럼 붕 떠 있는데, 그렇다고 그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는 건 아니다.


99개 단어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열거하는 호흡이 아주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활력도 신랄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싸게 배를 불리는 ‘인스턴트 라면’이 혁명을 막았다거나, 불면에 관한 몇 편의 단상들을 비롯하여(‘베개’ 등) 간간이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연상들도 있기는 하다. ‘우산을 가지고 내리라’며 성을 내는 버스기사에게서 친절의 아이러니를 엿본다든가, 아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의 인과가 얼마나 터무니없으며 어른들의 시선은 또 그와 얼마나 다른가 짚어주는 단상들도 새롭다고는 못해도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동할 때, 혹은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에, 술술 읽기엔 나쁘지 않다. 평소 한 페이지 가득 찬 활자를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오는 사람에게는 더욱이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글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출판사의 홍보 문구처럼 “시와 소설을 넘나든다”기보다는, ‘시도 소설도 에세이도 아니’라고 쓰는 편이 더 정직한 감상일 것이다. 연상은 연상이되 전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바쇼의 하이쿠처럼 단 두어 줄로도 시적 테마와 문장 이후의 여백은 전개될 수 있다. 단지 작가 이적의 단상들이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할 뿐이다. 아니, '글'에 대한 야망이 있는 문필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사소한 자의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렇게 좋은 가사를 쓰고 그렇게 똑똑한 사람인데 말이지.


작사의 재능과 산문을 쓰는 재능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좋아하는 뮤지션은 뮤지션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이석원의 에세이를 한 편도 안 읽었다. 어쩌면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만,


그래도 애정하는 가수니만큼 다음 책을 쓰게 된다면 음악을 할 때만큼 더 공들이고 머리를 싸매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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