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창녀〉(장 외스타슈, 1973)
여섯 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다. 일요일 밤 영화인데도 매표소 앞이 북적거렸다. 나는 여자들을 훔쳐보았는데, 연인과 함께 오거나 혼자 온 여자들이었다. 여자의 연인들을 저주하고 연인 없는 여자들의 연락처를 궁금해했다. 양쪽 모두를 욕정했다.
예술영화를 보는 여자들은 가끔 어여쁘다. 약간이나마 취향의 공통분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힙하고 예쁘게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예술영화를 보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대체로 괜찮은 편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분명히 그렇다.
〈엄마와 창녀〉는 3시간 40분짜리 영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거의 내내 딴생각을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시간 45분 정도는 나름 집중해서 보았고—7시 45분쯤 처음 시계를 봤다—그 뒤부터는 계속해서 딴생각을 했다. 딴생각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아니었고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한 줄 장면 하나에 꽂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이상하게도 영화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면서도 영화의 주인공들—두 여자와 한 남자—과 내내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건 물론 기분 탓이다. 나는 구경하는 입장이고 그들은 구경당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나는 또 현실에 있고 그들은 배우이니까.
알렉상드르는 영화의 시작부터 세 시간 내내 모든 대화를 독점하다시피 하는데, 그러다가 가끔씩 눈치를 보면서 자기 얘기가 지루하면 얘기하라고 여자에게 말을 한다. 벌써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여자는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얘기하는 방식과 말을 건네는 태도가 흥미롭게 때문에, 가끔씩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루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중간중간 포장하고 수습한다.
두 가지 권리—자기모순의 권리와 떠날 권리를 믿는 알렉상드르는 어떤 여자에게는 매달리면서 다른 여자들은 떠나더라도 상관없다는 눈치를 은근히 흘리는데, 그들의 관계는 불균형하고 마구 뒤엉킨 채로도 그럭저럭 잘 유지된다. 그야 물론 라디게가 썼듯이 재미없는 남자와 함께 행복할 바에야 사랑하는 남자 곁에서 불행하고자 하는 게 상당수 여자들의 습속이니까.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심부름을 시켜 줄 때 가장 기뻐한다. 내 얘기는 아니고 다자이 오사무 얘기다.
어쨌거나 여자들을 등쳐먹으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알렉상드르는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무책임한 인간인데,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거의 내내 그가 떠들어 대는 장광설의 대부분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거나, 또는 가끔씩 대사 한 줄 장면 하나에 꽂힌 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이어 갔지만, 영화가 워낙 긴 탓에 전부 기록해 둘 수 없었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황급히 오줌을 누고 담배를 피우며 마구 끄적여 놓기는 했지만, 대부분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장 피에르 레오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 고주파 휘파람을 불어대는 진동하는 속눈썹, 마리의 편지를 휙 던져버리는 레오의 무신경한 손끝, 취기와 진실을 오가는 베로니카의 마지막 롱테이크, 누군가가 부재한 흐트러진 잠자리, 레코드판을 들으며 벽에 가만히 기대어 누워 있는 마지막 마리의 롱테이크, 같은 것들뿐이다. (사실 조금 더 있지만 지금 여기에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가끔씩 천천히 깜빡이는 술 취한 사람의 눈꺼풀처럼 〈엄마와 창녀〉는 느긋한 페이드-인/아웃으로 각 시퀀스를 분리해 놓았는데, 영화의 전개와 퍽 어울리는 방식이었고, 어쩌면 내가 영화를 보는 동안 거의 내내 딴생각에 빠져 어딘가로 흘러갔다 돌아오기를 파도처럼 반복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아니 그들의 대화를 배경으로 다른 생각을 굴려 가면서, 나는 여자들 편에서,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는 남자를 비웃으며, 그곳에 있었는데, 사실 그 여자들 입장에서는, 그리고 영화 밖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어떤 여자들 입장에서도 나는, 알렉상드르 쪽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모르겠다고 쓰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극장을 나와 역으로 가는 길에는 연락처를 따고 싶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평소 극장에 갈 때와 달리 외모를 다듬고 와서 물어보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잘 정리된 단발머리에 엉덩이가 큰 검정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여자가 이 영화—두 여자가 무책임한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저들끼리도 애증을 품는—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했다. 나는 〈엄마와 창녀〉를 어떤 여자들과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같은 여자와 절대로 같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락처는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볼 수 없었고, 물어볼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자위를 했다. 축구를 보고 다섯 시에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