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며 기억하는 도쿄의 연말
카톡. 카톡
일본 지인들 그룹에 속한 대화창이 바쁘다.
'우리 망년회 날짜 어떻게 하지?'
'다들 회사 종무식이 28일이면 그날 마치고 모일까?'
'올해 주소 바뀐 사람들 없지? 늘 그렇듯 그 주소로 보낼게.'
아, 벌써 연하장을 보내는 연말이 왔구나.
기억을 더듬었다.
연하장을 주고받던 그때의 도쿄, 올 한 해도 수고했다고 인사를 주고받던 회사 사람들과
보고 싶은 지인들의 얼굴이 떠 오른다.
매일 아침, 콩나물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길에 오른다.
전철이 오기 전에 문이 열리는 양 옆으로 일찍 도착한 순번부터 줄 지어 전철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 명씩 몸을 꾸역꾸역 전철 속으로 집어넣는 풍경은 우리의 흔한 출근 풍경이었다.
엘리베이터처럼 무게 초과라는 알림이라도 뜨면 모를까.
배차 간격이 그렇게 길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뒤로 돌아 타면서 엉덩이부터 밀어 넣는 풍경이 낯설기도 잠시, 역무원이 쫓아와 문에 낀 옷가지와 가방을 손수 밀어 넣어주길 바라면서 나도 마지막 문이 닫히기 직전 세이프 탑승을 하기 일쑤였다지.
저녁 퇴근길이라고 다를 게 없지만, 특히나 아침은 이렇게 매일 전쟁이었다.
환승을 하는 곳이면 더욱 지옥철이었고 팔 하나 겨우 펼 수도 없을 공간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이나 들을 수밖에 없던 그 출근길을 이 사진 몇 장으로 다시 회상해봤다.
지금 기억이 나건대, 미타카에 살 때는 소부선의 종점역이라 대게는 앉아서 편하게 갈 기회가 많았는데 늘 그렇듯 조용하게 두 줄로 반듯하게 잘 기다리다가도 전철이 도착하면 너나 할 거 없이 큰 보폭의 발걸음으로 목표한 빈자리로 돌격하는 모습이 참 반전스러워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는 소심하게 자리를 뺏긴 한 샐러리맨이 본인이 목표했지만 결국 앉지 못했던 그 자리 앞에서 자리싸움에서 이긴 다른 샐러리맨을 위에서 뚫어져라 내려보는 풍경도 있었으며,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그런 시선의 틈을 차단하듯 눈을 감아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책을 읽거나 폰을 만지거나 당연한 듯 신문을 접고 또 접어 손바닥에 얹어 읽거나 하는 아침의 출근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은 평소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소소한 재미거리였다.
매일 같은 시각에 마주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 하는지.
'어랏, 어제는 꽤 과음을 하셨나 보네, 오늘은 데이트가 있으신가?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집을 나선 거 같으시고. 저분은 오늘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다' 등등.
그리고 금세 나의 아침 표정은 어떻게 비추어 질까 궁금해하곤 했다.
나는 과연 나의 아침을 잘 맞이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오하요우고자이마스(좋은 아침이에요)' 인사를 건네면서 출근하여 '오츠카레사마데시따(수고하셨어요)'를 건네며 퇴근하던 내 일터의 고객들은 특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
우리의 고객들 중 절반 이상이 관공서였는데 그래서 관습을 더 중시하고 때에 맞는 인사와 매뉴얼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관공서와의 미팅이나 국토 교통성에서 입찰이라도 있는 날이면 너무 튀어 보이지 않게 가장 기본적인 정장 복장을 하고, 과장급 고객들과 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보이는 외국인 여자라고 기죽을 거 없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정해진 매뉴얼에 벗어나지 않는 관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명함을 한 번이라도 주고받은 회사들은 따로 엑셀에 저장해뒀다가 또 다른 지역의 관공서 미팅에서 만나게 되면 인사 한번 더 하면서 연하장 리스트에 올렸다가 연말이 되면 우리 부서 이름으로 연하장을 보내드리곤 했다.
올 한 해도 참 고생 많으셨고 감사했다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모든 상황에 맞게 표현되는 '오츠카레사마데스(수고하십니다)'가 주는 포괄적인 의미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 참 많이 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우리도 건네는 첫인사말로 그리고 끝맺음으로도 많이 쓰지만, 일본만큼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맺는 이 말은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는 대화보다 더 편할 때가 많았다.
당신은 안녕하신지,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혹 안녕하시지 않았더라도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다고.
때론 그냥 지나치기 어색할 때 던진 말로도 쓰였지만, 때론 여러 말 담지 않아도 이 한마디로 내 진심을 전달하곤 했으니까.
그렇게 올해도 나의 일본에 있는 지인들은 어김없이 연하장을 만들고 쓰고 정성 들여 손편지를 눌러 담아 각자의 집으로 우편을 통해 안녕을 전달한다.
올 한 해도 너도 나도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고, 내년에도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챙기는 소소한 문화.
직접 만나서 전해주는 편지의 맛도 있지만, 아직도 그렇게 그들의 문화 속에선 우편을 붙이고 빨간 우체통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실어 나른다.
올 한 해도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았다.
저마다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그릇으로 전진하기도 하고 때론 후퇴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특별한 것 없이 머물러 있는 똑같은 일 년을 보냈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우리의 일상에 '어제와 같음'이라는 건 없다.
분명 치열하게 때론 느긋하게 오늘, 그리고 일 년을 살면서 내가 모르는 성장을 했을 테고, 내가 모르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을 테며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게 실패를 거듭한 나날들이었든 무언가의 결실로 마침표를 찍었든.
'많이' 수고했으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린다고 안녕을 보낸다.
보고 싶은 지인들에게,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올 한 해도 건강하게 많은 시간들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今年も大変お疲れ様でした。来年も何卒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