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 10년 차, 파리 정착 4년 차의 이방인의 희로애락 프롤로그
파리에 정착하고 네 번째 겨울을 맞이 했다.
4년 전 겨울,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몰랐을 거다.
몇 번의 계절을, 몇 번의 해를 이 곳에서 보낼 줄은.
20대 초중반, 서울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여 년의 직장 생활의 끝 즈음, 고민했던 해외살이를 위해 사표를 던지고 떠났다.
워킹 홀리데이. 일본 도쿄로.
일본어와 마케팅을 전공했지만 여행과 몇 번의 연수로도 해외 경험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자신했었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 유학은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일을 하면서 드는 회의감에 고민은 시작되었다.
내가 매일 쓰고 소통하는 이 언어 안에 그들의 문화와, 경험치는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말이란 글자로 '소통' 하는 이외의 것들을 수반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처럼 일상을 보내고 사고(思考)를 해보고,
문화를 읽어내고 그렇게 최소 사계절을 보내봐야 비로소 언어 이외의 것들을 내 방식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캐리어 하나 들고 도쿄 땅을 밟은 지 반년만에 취업을 했고, 그 후로 5년간을 더 일본에서 보냈다.
찬란했던 나의 20대 중 후반은 일본으로 가득 채워졌다.
혼자여서 쓰라린 순간도 있었고, 함께여서 빛나던 순간들도 있었다.
가족 같은 친구들도 지인들도 생겼고 그곳이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렇게, 어떤 순간이던 내 편에 서서 나를 지지해주던 나의 솔메이트와 영주권을 받고 그곳에 정착할 줄 알았다.
우리의 삶은 늘 그러하듯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로 흘러가기에 재미있는 거라고.
서른이 되던 해, 전직을 위해 잠시 쉬던 중 떠나왔던 파리 여행에서 이미 결정되었는지 모른다.
연고도 없던, 언어도 문화도 생소했던 이 나라, 이 도시로에서의 제2의 삶이.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했던 그 순간부터 내 가슴은 멈추질 않았다.
사랑의 열병처럼 파리를 앓았고, 그 후 3개월간의 준비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되지 않았던 시나리오였던 프랑스를 위한 일본 생활 정리는 그리 쉽지 않았다.
비자도 나의 집도. 내 사람들도
그렇게 반년만 해보자고 떠나온 유학길에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이제 이곳이 '현재'가 되어버린 프랑스 파리.
인생에서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언어, 불어를 시작했다.
플라워라는 새로운 전공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것들 투성이었고 새로운 사람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주변의 일상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세월에 비어있던 무언가를 채워주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다 쉽지 않았던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서의 삶은 일본에서보다 더 이방인 같았다.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 색깔, 머리색조차도.
그리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또 철저히 달랐다. 때론 상처 받기도 했고 때론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때론 성장의 연속이었다.
이 매력적인 도시에서 얻은 것이 많았던 만큼 잃은 것도, 그리고 놓아주어야 했던 것들이 많았다.
사계절을 다 느껴봐야 아는 파리의 여러 색깔 속에서 삼십 대에 나는 또 성장했다.
그렇게 파리의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여전히 꿈이 많은 파리의 이방인으로써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