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선물하는 일, 플로리스트
파리의 플로리스트가 된 지 4년 차.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플라워 숍에서 취미반으로 끄적이다,
퇴사 후 본격적으로 디플롬 코스를 수료하고 운명처럼 파리로 이주를 했다.
사실 (이 거창한 도시) 파리로 오게 된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넌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쳇바퀴 도는 생활을 몇 년 동안 거듭하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 걸까.
나는 앞으로 얼마 동안 더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나 다 운 걸까.
어디에서, 어떤 이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은가.
영주권을 받고 영원히 살 것 만 같았던 도쿄도 외국이라는 느낌보다 내 일상의 한 부분처럼 스며들어있었고,
어느 쉼표와 동시에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들을 하나씩 리스트로 적어놓고 주말마다 하나씩 배워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몇 시간이고 혼자 앉아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 노동을 좋아했던 게 아직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내 리스트 중 절반은 손으로 하는 일들이었다.
사실 내가 일본 회사에서 담당했던 파트 중의 하나였던 마케팅도 어쩌면 디자인을 구상하고,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트로 작업을 하거나, 홈페이지도 작성하는 컴퓨터를 통한 손작업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일여 년간의 배움의 길을 돌고 돌아, 꽃을 만났다.
사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운 작업으로 전직 활동도 했었으며, 나름 활동적인 도전들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랬다.
나는 피드백이 있는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하루가 끝남과 동시에 내일 작업은 더 잘해 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구나.
팀으로 몇 개월간 작업하여 성과를 내는 성취감보다는, 개인 작업을 통해서 그때그때 고객과 소통하는 것을 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구나.라고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도쿄의 큰 플라워 숍에서 디플롬 코스를 시작했다.
꽃을 하는 시간 동안은 '꽃과 나' 이외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살아있는 것을 내 손으로 표현해 내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 속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나타낸다는 게 참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행하는 나라의 스타일이 있으며, 각 나라마다 표현해 내는 플라워 스타일이 다르고 사용되는 꽃의 종류도 다르다.
그에 따라 같은 국적의 플로리스트라고 해도, 물론 스타일이 천차만별로 다르며 표현해내는 성격도 다른 걸 보면 공부할게 너무나 많은 세계인걸 새삼 느낀다.
그렇게 파리에 오다.
디플롬 코스가 끝났을 무렵, 도쿄의 플라워 샵에 취업하기 전에 친구와 미리 계획해둔 파리 여행을 떠났고
친구가 먼저 한국으로 귀국하고 일주일 가량을 더 파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여행을 잘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 그 시점부터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파리를 앓기 시작했고,
여러 고민 끝에 잠시 파리에서 꽃을 느껴보기로 했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파리의 플라워 샵에서 인턴을 했었던 플로리스트를 만나 여러 가지 현지 사정을 듣고
일단 반년의 어학과 함께 인턴을 해 보고 도쿄를 귀국하는 걸로 단기 유학을 준비했다.
그렇게 파리의 플로리스트가 되다.
그렇게 시작된 반년의 유학 후 더 욕심을 부려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로 이주를 했다.
어학과 짧은 인턴을 마친 뒤, 바로 프랑스의 앙제(Anger)에 소재한 플라워 학교와, 파리의 플라워 전문학교를 졸업했고, 두 개의 플로리스트 국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여러 파리의 유명한 플라워 샵 인턴을 거쳐, 현재 파리의 한 플라워 샵에서 정직원으로 다양한 식물과 꽃, 샹송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플로리스트가 되어 비로소 녹색이 주는 생동감, 그리고 살아있는 식물에게서 우리는 무의식 중에 에너지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더 예뻐해 주고, 더 보듬어 주면 더 나은 결과물이 되는 꽃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곤 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그 마음을 느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일 고객에게 꽃을 전달한다.
우리나라보다는 꽃을 선물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프랑스, 그리고 파리.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바게트 빵을 사면서 무심하게 꽃 한 다발을 장바구니에 담아서 집으로 들어가는 파리지앵들.
퇴근길 그날 하루 고생한 자신을 위해 꽃을 한 다발 선물하기도 하고
계절 꽃을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 매주 식탁에 올릴 소소한 꽃을 한 다발씩 찾기도 한다.
그리고 초대받은 디너에 걸맞은 꽃을 사면서 플로리스트의 조언을 구하는 게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
파티나, 웨딩에 소비하는 꽃의 종류와 규모, 스타일도 물론 아시아보다 다양하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에는 항상 꽃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해 버릴 아름다움이지만, 내 손길을 통해서 조금 더 아름답게 시들기도 하고
때론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꽃에 따라서는 드라이플라워로써 또 다른 색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에 남기도 한다.
언젠가 우리의 문화에도 꽃과 식물이 가득한 일상이 되길 바라며.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꽃에 대한 영감으로 이어지는 이 시간들이 주는 소중함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위해 플로리스트의 일상을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꽃,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