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사고는 리스크 회피에서 시작한다.

자기 분석 프로젝트 2탄

by 김에녹

바로 옆자리에서 나를 3년간 매일 봐온 친한 직장동료 형이 있다. 어느 날 형에게 카톡으로 물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이렇게 보내왔다.


"장점이 많은데, 몇 개만 적어볼게. 전략적 사고, 인간관계(커뮤니케이션), 리스크 관리, 트렌드 캐치, 조직문화 개선, 문서작성, 꼼꼼함.. 사실 더 많은데 조금만 쓰마."


성의 있게 생각해 준 형이 고마웠다. 하나하나 소중한 답변이었다. 그중에서도 '전략적 사고'가 눈에 띄었다. 다른 것들은 스스로 다소 인지하고 있던 부분인데, 전략적 사고에 대해서는 좀 의아했다. 형에게 다시 물었다.


"오... 그런데 제가 전략적 사고가 되는 건가요? 나머지는 조금은 스스로 납득이 되는데 이건 제가 잘 모르겠어요."


형은 다시 답변을 보내왔다.


"응. 니가 생각하는 거 보면 느껴졌어. 가끔 여러 의견들에 대해 현실적인 제약이나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까지(정치적인 것 포함) 고려해서 안들을 조정하는 모습들을 보였어. 나 같은 경우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너는 한번 더 고민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하더라고. 다음 스텝까지 고민하고. 몇 수를 내다보는 거지."


"전략이라는 게 사실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 내가 합리적으로 선택과 집중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데, 나 같은 경우엔 그것을 무시하고 이상을 좇는 경우가 많은데, 너는 여러 조건들을 고민해서 의견을 얘기하더라고. 비유를 하자면 임요환이 미네랄과 베스핀 가스 자원 내에서, 그리고 상대방의 대처에 따라 어떤 전략을 선택하는 것처럼. 테크트리 같은 것이지. 여러 환경을 잘 인식하고 파악한다는 것이 장점 같아."




형의 말이 너무나도 주옥같아 거의 그대로 옮겼다. 이 말이 귀한 이유는 내가 스스로에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부족한 역량이라 생각한 부분이고, 자신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게 내 장점이라니. 많이 의아하면서도 내심 마음이 들떴다.


'전략적 사고'라는 이 강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단어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생각했던 전략적 사고와 형이 생각한 전략적 사고가 조금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전략적 사고라는 것을 소위 말하는 '기획력'으로 생각했다. '전략'과 '기획'은 늘 붙어 다니는 단어의 조합이지 않은가? 기획력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나는 꽤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형 말처럼 나는 무언가를 진행할 때 이상을 좇거나 감을 따라 하지 않는다. 특히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철저히 내가 가진 자원들과 현재 처한 상황들을 백분 고려하여 여러 가지 안을 제시했고, 여러 동료들로부터 각 안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각 안을 진행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측하고자 했다. 다만 이것을 전략적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고 했을 뿐. 오히려 생각하지 않고 동물적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사실 갑작스러운 리스크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 성격에서 기인한다. 나는 상대적으로 임기응변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다시 말해 순발력이 부족하다. 이것은 신체적으로도, 사고적으로도 둘 다 그런 편이다. 그런 나에게 돌발적인 위기 상황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때 선뜻 내지르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올 여러 상황들을 십분 고려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 일에서 훨씬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순발력이 부족할까? 타고난 운동신경과 반사신경도 있겠지만, 분명 어린 시절의 후천적 요인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굉장히 여린 아이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급격히 당황하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다 보면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인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급기야 평소의 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대처를 하기까지도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순발력이 부족한 이유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능한 모두 예측해서 행동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편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을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략적 사고'를 잘하는 것이라는 평을 받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회사생활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을 줄곧 듣고는 했다. 반대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지금, 많은 것이 예측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이 나에게는 많이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상황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가진 자원과 현재 놓인 상황을 고려해서 전략적으로 내가 먹고살 길을 고민하는 수밖에. 그리고 어차피 인생은 예측 불가능성의 연속이기에 돌발적인 상황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것이 오늘의 결론이다.


전략적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20대 초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들과 동창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내가 니 말은 잘 듣는다이가. 우리 고등학교 때 애들 맨날 말 안 듣고, 쌤들한테 장난치고 했을 때, 어느 정도 했다 싶으면 꼭 니가 그만하라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딱 그만했어야 할 타이밍인기라. 니는 꼭 그렇게 선을 잘 지키더라. 그래서 좋았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하면 나는 '치고 빠져야' 하는 타이밍을 잘 알았던 것 같다. 어린 나이였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받아줄 타이밍과, 화를 내실 타이밍을 친구들보다도 훨씬 예민하게 캐치했던 것 같다. 즉 이 다음 단계의 상황이 예상이 될 때 그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예상되는 리스크를 회피하고 현재 놓인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 이것 또한 전략적 사고의 일환이었을까?




세 줄 요약.

1. 나는 생각보다 전략적 사고를 잘하는 사람이다.

2. 내 전략적 사고는 리스크 회피에서 기인했다.

3. 예측 불가능성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유연하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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