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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22. 2024

내 꿈은 K-직장인이었다

오사카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1)


내 꿈은 직장인이었다. 연봉도 많이 받고 안정적으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전형적인 K-직장인. 그랬기에 나는 10대 때부터 인생 전체를 나름대로 계획해 왔다. 대학생 때는 성실한 학교생활과 대외활동을, 20대 후반에는 취업을, 30대에는 결혼과 출산을, 40대에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을, 50대에는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퇴직 전에 결혼시키는 것을, 그리고 60대 이후엔 이 모든 일을 다 끝내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을 10대 때부터 꿈꿨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많은 꿈을 꿔보던 청춘에, 나는 내 미래를 미리 정해놓고서 정해진 대로만 생각했고 행동했다. 향후 최소 40년 간의 내 삶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고 정해진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은 J(계획형)로 사는 것이 정답이라 굳게 믿었다.


계획한 것들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욱여넣었다. 세상이 이런 것을 원하니 나의 이런 부분을 이렇게 잘 가공하고 끼워 맞춰보자고만 생각했다. 나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시간도 딱히 가지지 않았다. 그런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스펙 하나 더 쌓고 지식 하나 더 늘리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어차피 누구나 생각하는 괜찮은 인생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답이 아닌 것들은 그저 오답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계획대로 이루어졌고, 겉으로 보기에 나는 꽤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대단히 착각하며 살아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차곡차곡 잘 되어가는 것만 같던 내 인생은, 마치 속도만을 중요시하는 부실공사처럼 군데군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욱여넣었고, 내가 원하고 꿈꾸는 나만의 고집스러운 세계관 속에 나의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마저 욱여넣으려 했다. 욱여넣기 위해 간절히 힘준 만큼 완전히 으스러져 버렸다. 차곡차곡 계획적으로 쌓아온 내 삶은 사실 모래성에 불과했고, 이 모래성은 큰 파도 한 번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내 10대, 20대 살아온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바닥에서 기어다니 듯이 지냈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막막했다. 평생을 계획한 대로, 정해진 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그 길만을 고집했던 내 삶은 멈춰버렸다.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해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배운 게 회사생활밖에 없는 나는 회사 없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직장에서 일 잘 한다고 인정 받던 내 업무 능력은 그야말로 직장에서나 가능하던 알량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능력을 하나도 세일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길고 외로운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어두운 터널에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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