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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25. 2024

살던 대로 살지 않기로 결심하다

오사카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2)



방황 속에서 얻은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더 이상 살던 대로 살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취업을 해서 괜찮은 직장을 찾아다니고, 연봉이 조금 더 높으면 솔깃하는 그런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너는 조금 극단적이야. 이것 아니면 저것 이게 너무 확실해"라는 말을 가끔 듣고는 했다. 하지만 정해진 대로 살지 않기로 기왕 결심했으니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구직 사이트에 올려둔 이력서 탓에 가끔 헤드헌터로부터 이런저런 연락이 올 때마다 솔깃하고는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시 다잡고는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탐색 중이었다. 가장 무난한 방법은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었고 유튜브 등을 통한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관심이 생기는 현장 강연이 있으면 찾아다니기도 했고, 원데이클래스를 찾아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발견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나는 글쓰기를 꽤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어한다는 점이었다. 


글쓰기는 블로그로 처음 시작했다. 블로그에 일상을 남기고 나만의 생각을 남기는 일에 한동안 집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조금은 남다른 관점과 나만의 언어로 글을 쓰는 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 역시 우연히 수강한 한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일상 속에서 포착되는 찰나의 순간을 찍는 것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과 사진. 이제는 어디 가서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글쓰기도 좋아하고, 사진 찍기도 좋아해요."라고 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바로 '여행작가'였다. 모든 아이디어는 간절히 무언가를 염원하던 중 갑작스럽게 나온다. 여행작가라. 직장인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에는 단 한 번도 떠올리지조차 않았던 단어였다. 그러나 이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어, 이거 내가 해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묘한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 처음으로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내고 가슴이 설렌 순간이었다.


문득 몇 개월 전 들었던 '1인 출판사 수업' 원데이 클래스가 생각났다. 세나북스는 '한 달의 OOO'라는 여행 에세이 시리즈를 다양하게 출판하고 있는 곳이다. 이미 '한 달의' 후쿠오카, 교토, 오키나와, 요코하마, 홋카이도 등 여러 일본 도시에서의 한 달 살기를 지낸 책이 출판되어 있었다. 이 책들 사이에서 내가 쓴 여행기가 함께 라인업 된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설레는 상상이었다.


동시에 오사카에서 지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B가 생각났다. B는 애니메이션 덕후이고 일본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일본이 좋아 수년간 일본어 과외를 받아오곤 했고, 주말에 집에서 뭐 하냐고 물으면 집에서 애니메이션 본다고 대답하는 그런 친구다. 그런 그는 돌연 작년 가을, 더 늦기 전에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고 싶다며 한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오사카로 떠났다. 그런 B의 행보가 이해 안 되기도 하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 생활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정도 된 B는, 나에게 방황하고 고민할 것 같으면 오사카에 와서 한 달 정도 여행이나 하면서 보내보라고 수차례 권하고는 했다.


글쓰기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가,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 오사카에서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껏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 온전히 나 혼자서 만들어 낸,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첫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출판사 대표님께 연락해서 나의 강한 의지와 계획을 말씀드리고, 아직 원고도 없는 상태에서 투고 제안을 드리는 일이었다.


무모하지만 가슴 뛰는 열정 하나로 드리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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