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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26. 2024

출국 2주 전 결정된, 오사카 한 달 살기

오사카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3)



3월 말, 신촌의 한 카페에서 세나북스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에게는 다소 구구절절하게 장문의 이메일로 나의 사연에 대해 말씀드렸다. 대표님 역시 약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다가, 40대 초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지금의 1인 출판사까지 오게 된 케이스다. 그랬기에 나의 이러한 방황도, 이러한 방황에서 느낄 불안감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계셨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직 책 한 권 내보지 않은 신인 작가 지망생과 선뜻 출판 계약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 나름대로 고민해서 대표님이 부담이 없을 만한 제안을 드렸다. 일단 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봐주신다면, 오사카에 가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사진 찍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녀와서 나의 결과물을 보고 나서 최종 출판을 하실지 결정하셔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라도 대표님의 부담을 최소화해드리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나의 제안을 수락해 주셨다. 그렇게 '한 달의 오사카' 프로젝트는 마침내 시작되고야 말았다.


신기한 것은 세나북스에서 많은 '한 달의 OOO' 시리즈가 있었지만 아직 '한 달의 오사카'는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표님조차도 '한 달의 오사카'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어떤 작가님이 하게 될지 궁금하며 기다리던 중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내가 대표님께 오사카에 가고 싶다고 연락을 드려 대표님도 놀랐다는 것이다. 이것야말로 운명인가. 거처할 친구네 집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오사카는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쿄는 생각보다는 멀고 너무 복잡하며 비싸다. 후쿠오카는 가깝고 저렴하지만 뭔가 뭔가 아쉽다. 그 사이의 절충안이 되는 도시가 바로 오사카라고 생각했기에 오사카를 좋아했다. 그런 오사카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대표님과 미팅을 마치자마자,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 진짜 오사카 가서 한 달 살아도 될까?" 대표님을 만나고 온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친구에게 전했다. 고맙게도 친구는 내 소식을 반기며 "당연하지. 와서 나랑 여행이나 다니자."라고 말해주었다. 출국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는 아무 때나 와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평소 즐겨 타던 항공사 앱에 들어갔다. 위탁 수하물 15kg를 포함한 항공권 중 가장 저렴한 날짜인 4월 3일 오전 11시로 항공권을 예매했다. 출국 단 2주 전이었다.


2주는 한 달 살기를 준비하기엔 생각보다 빠듯한 시간이었다. 오사카에서 무엇을 하고 보낼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등의 일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구가 현지에서 살고 있어 한 달 살기에 필요한 생필품(세면도구, 로션, 식기류 등)은 전혀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계절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가벼운 옷가지 몇 벌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2주 동안 핸드폰 요금제도 알아보고, 가족과 주변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갖가지 준비를 했다.


친구네 집에 가져갈 반찬거리나 요깃거리도 가져가기 위해 마트에도 들렀다. 마트에서 잊지 않고 꼭 산 것은 연양갱 두 박스였다. 일본에서 친구를 통해서든, 나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인데, 마음이 통한다고 느낄 때 그래도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2024년 3월은 가수 '비비'의 '밤양갱' 노래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K-Pop이 인기 있는 요즘, 적절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스무 개의 연양갱을 모두 잘 나눠주고 온다면, 스무 명의 의미 있는 크고 작은 인연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렜다.


서점과 도서관에도 열심히 들렀다. 우리나라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여행 에세이를 쓴 작가님들이 많았다. 목차와 프롤로그 위주로 그들의 책을 빠르게 읽어 나가면서, 나는 어떤 한 달 살기를 하고 올지 그려 보았다. 막막했지만 동시에 할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서 정해진 일만 하던 내가 여행을 하며 창작을 하게 되다니. 다양한 여행 에세이를 살펴보면서 혼자서 내가 쓸 책의 가제도 정했다. '어쩌다 오사카'였다. 어쩌다 퇴사를 하게 되고, 어쩌다 방황하던 중, 어쩌다 오사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최종 제목은 다르게 되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한 달 살기를 준비했다.


세나북스에서 나온 여러 '한 달의 OOO' 시리즈도 읽어 보았다. 세나북스 일본 여행 에세이 작가님들의 특징이라면, 전부 일본어를 전공했거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일본에서 장기간 일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나와 같은 일본과 일본어 문외한이 일본 여행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잘 없었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일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기에 나올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출국을 2주 남겨두고 한 일은 이것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2주의 시간도 금세 흘렀고, 출국날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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