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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27. 2024

단 한 가지 계획, 최대한 현지인처럼

오사카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4)



오사카 한 달 살기를 결심하고 주변에 알리고 나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가서 뭐 하고 지낼 거야?" 내 대답은 이러했다. "그날그날 아침마다 정하려고."


출국까지 2주밖에 남기지 않은 다소 촉박한 일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 오사카 한 달 살기는 그 자체가 나에게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물론 오사카 현지에서 먼저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기에, 믿는 구석이 있다고 봐도 되긴 하다. 그러나 핵심은 계획형(J)으로 살아온 내가, 무계획형(P)의 삶을 살아보기 위한 도전이라는 점이었다. 여전히 틈만 나면 책을 보고 블로그를 찾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찾아보는 나였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난다는 것 자체가 설렜다. 갑각류, 파충류가 성장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 것을 '탈피'라고 했던가. 나에게 무계획 오사카는 탈피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오사카는 2013년 처음 방문한 이래로 벌써 다섯 번째 방문이다. 일본 여행 중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행으로 따져도 단일 도시를 이렇게 여러 번 방문한 곳은 하나도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처음 여행한 도시가 오사카였으며, 나에게는 일본의 첫인상과도 같은 동네다. 깔끔한 골목길, 고즈넉한 마을들, 그땐 잘 알지도 못하고 방문했던 한 참치 전문점과 라멘집. 그렇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조금씩 호감이 생겨 더 자주 방문하게 했던 도시가 바로 오사카다.


그랬기에 더욱 계획은 세우고 싶지 않았다. 도톤보리, 오사카성, 우메다, 난바 등 오사카의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가봤다. 일본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미식가의 도시 오사카에서, 먹고 싶은 음식도 대부분 먹었다. 오사카가 본 고장이라고 하는 타코야끼는 일본 여행을 가면, 특히 오사카 여행을 가면 하루에 두 번도 먹는 음식이다. 더 이상 오사카의 표면적인 새로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는 한 단계 더 깊숙이 들어가길 원했다. 오사카 사람들의 주말은 어떠한지, 퇴근 후의 삶은 어떠한지, 무엇을 즐겨 먹고 쉴 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무계획'이라는 한 달 살기 계획 중 단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바로 '최대한 현지인처럼 살기'였다. 물론 신분상으로는 재류카드도 없는, 심지어 무비자로 오사카에 온 그저 외국인에 불과하겠지만, 관광지는 가급적 벗어나고 일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속으로 최대한 밀착해서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여행을 다녀온 2024년 4~5월의 오사카는 유례없는 전 세계적인 여행 붐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오사카는 역대급으로 밀려오는 관광 인파로 인해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만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들과 달리 움직이고 싶어서 더욱 관광객이 없는 곳만 찾아다녔다. 일본인 위주로 있는 곳을 찾으면 묘한 뿌듯함과 안도감이 생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2024년 4월 3일에 오사카에 들어가서, 2024년 5월 8일에 한국으로 다시 나왔다. 5주, 35일 하고 하루 더한 36일간의 여정이다. 아무리 애쓴다 하더라도 맛보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짧은 일정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꾹꾹 눌러서 살았다. 이제는 더 이상 놀러 온 여행객의 자세가 아니었다. 한 달의 오사카를 취재하러 온 기자의 마음으로 매일을 살았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나름 스스로 정한 규칙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하루 최소 1만 보 이상 걷자는 것. 둘째는 아무리 쉬는 날도 하루에 한 군데 이상은 둘러보자는 것. 셋째는 사진 촬영과 현장 취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의미 없는 한 달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물론 있었다. 출국하기 전날까지도, 아니 출국 날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에서조차도 나의 기분은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이렇게 무턱대고 가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물론 책을 쓰러 간다는 좋은 명분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즐거워야 하는 여정이라 생각했다. 내가 즐겁게 보내고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나아가 즐겁기만 한 것이라 의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부렸다. 조금이라도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여러 상황에 나를 노출해보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오사카 한 달 살기는 '어쩌다'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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