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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05. 2024

평화로운 오사카, 나카노시마 & 기타하마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오사카 지역별 특징 (4)


오사카에는 여러 이름의 강이 있다. 우리의 한강은 서울 곳곳의 여러 물줄기가 합쳐져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오사카는 지역별로 강줄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강은 신오사카와 우메다를 가로지르는 '요도 강'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한강에 강줄기를 둘로 나뉘는 '여의도'라는 작은 섬이 있듯이, 오사카에도 여의도처럼 강 한가운데 좌우로 길게 위치한 섬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나카노시마' 섬이다. 이 나카노시마를 가운데에 두고 북쪽에 흐르는 강을 '도지마 강', 남쪽에 흐르는 강을 '도사보리 강'이라고 한다. 또한 남쪽에 흐르는 도사보리 강 건너편에는 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예쁜 카페가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이 지역을 '기타하마'라고 한다.



(4) 나카노시마 & 기타하마



나카노시마와 기타하마 지역에 처음 간 것은 오사카에 도착한 다음 날이다. 사실상 '한 달의 오사카'의 첫 일정이 바로 이 나카노시마와 기타하마인 셈이다. 어딜 갈지 모르고 방황하는 나에게 친구가 첫날 일정으로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설렘 가득한 첫날의 일정에 딱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 푸른 녹지와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 강변을 따라 예쁘게 늘어선 카페들, 근대풍의 멋진 건물과 현대적인 고층 빌딩까지. 나카노시마와 기타하마는 나에게 있어 한 달 살기의 설레는 시작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나카노시마부터 살펴보자. 나카노시마의 면적은 좌우 길이 3km, 넓이 50ha로, 여의도의 9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나카노시마는 오사카 사람들의 평화로운 쉼터 역할을 해주는 곳이다. 기타하마 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나카노시마 섬의 동쪽에는 '나카노시마 공원', '나카노시마 장미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나카노시마 장미정원은, 장미가 개화하는 5월과 10월에 많은 오사카 시민들이 방문하는 명소다. 내가 방문한 4월 중순에는 아직 장미는 피지 않았지만, 장미가 가득 피게 될 공원의 넓고 푸른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다.



나카노시마에는 눈여겨 볼만한 근대적인 건축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오사카시 중앙공회당' 건물이다. 붉은 벽돌색의 외관, 푸른 청동빛의 아치형 지붕을 보니 마치 서울역 구청사가 떠오른다. 그 옆에는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이 있다. 내부에 잠시 들어가 보니 마치 타이타닉 연회장 입구가 연상되는 멋진 계단과 난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낡은 난간의 나무, 오래된 계단과 바닥 자재를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을 자주 다녔던 때가 있다. 서울도서관 역시 서울시청의 옛 청사를 잘 보존하여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좋은 사례다. 서울도서관을 갈 때마다 오래된 역사의 현장으로 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나카노시마 도서관 역시 오사카 시민들과 오랜 시간 그렇게 함께 해오지 않았을까.



길쭉한 나카노시마 섬의 중간 부분에는 '오사카 시청', '일본은행(Bank of Japan)'과 같은 오사카의 핵심 행정 및 금융기관이 모여 있다. 일본은행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의 옛 건물와 그보다 최근에 지은 듯한 새로운 건물이 함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도 최초의 근대식 한국은행 건물을 현재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나카노시마 페스티벌 홀' 등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이 모여 있기도 하다. 특히 나카노시마 미술관이나 나카노시마 페스티벌 홀에서는 한국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유명 예술가들의 전시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리 정보를 구해 이곳에 방문한다면 나카노시마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원하는 전시나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외에도 나카노시마 지역에는 '오사카시립 과학관', '나카노시마 코테츠 박물관', '나카노시마 아동도서관'과 같이 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즐길만한 체험 요소들도 많다. 특히 나카노시마 아동도서관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오사카 국제 회의장'이 있고, 5성급 '콘래드' 호텔을 비롯한 다양한 4성급 호텔도 많이 있어 비즈니스 목적으로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며, 나카노시마에서 도사보리 강을 건너 남쪽에 있는 요도야바시는 다양한 금융회사가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스미토모 미츠이 은행' 본사 건물이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회사 건물을 보는 듯했다. 서울 여의도와 뉴욕 월스트리트, 그리고 오사카의 요도야바시까지, 한때 금융계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이러한 금융지구를 보면 치열했던 취준생 시절을 떠오른다.



의외로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어떤 건물도 아닌 한 다리였다. 바로 '요도야바시 다리'라고 하는 다리다. 나카노시마 섬에서 요도야바시 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 다리는, 마치 유럽 소도시 한 마을의 오래된 다리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동대문의 청계천 다리가, 어쩌면 프라하의 카를교가 생각나기도 하는 이 다리가 예뻐서 한참을 이곳에 머물러 있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서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는 한 아주머니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카노시마는 다양한 근대풍의 건물들을 통해 오사카의 근현대를 간접적으로 느끼면서도 동시에 오사카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장소다. 정부부처 또는 공공기관에서 열심히 일하는 오사카 사람들, 그리고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여유롭게 문화 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 오사카 그 자체였다. 푸르른 녹지 조경과 섬 옆으로 흐르는 강물도 한몫했다. "그동안 오사카 여행만 오면 갔던 난바와 우메다는 결코 오사카의 전부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오사카 한 달 살기 첫날부터 절실하게 들었다. 복잡한 관광객들의 틈에서 벗어나 오사카 현지인들의 일상과 휴식 속에 함께 젖어드는 것은 내가 이번 한 달 살기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다.


 

아울러 나카노시마의 남쪽 '도사보리 강' 건너편에는 '기타하마' 지역이 있다. 기타하마에서 유명한 것은 단연 강가에 줄지어 있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카페들이다. 우리의 한강과 달리 도사보리 강변에는 자동차 도로가 없어서, 이 강변 카페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오사카 도심과 어우러진 도사보리 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소위 '한강 뷰'를 선호하는 것은 비단 한강만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강과 함께 보이는 여러 빌딩들, 그리고 한강을 따라 움직이는 도로 등 서울의 도심과 한강을 함께 보고 싶어서이지 않은가. 기타하마의 카페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도심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저 멀리는 오사카 빌딩들의 스카이라인,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는 반대편 나카노시마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공원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풍경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여유롭다'고 느끼지 않나. 



오사카에 온 다음 날 이곳에 오고서 너무 좋아서 일주일 정도 뒤에 저녁 시간대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오사카는 기본적으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석양이 아름다운 편인데, 대체로 도톤보리 또는 우메다 스카이 빌딩에서 보는 석양이 아릅답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본 오사카의 석양 중 최고는 바로 이 나카노시마에서 본 석양이었다. 오사카에 온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던 때였는데, 당시 일주일 동안 너무 빠듯한 스케줄과 생각보다 쉽지 않은 한 달 살기 일정에 많이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계획 없이 오사카에 와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던 때였다. 그렇게 한 달의 오사카를 즐기기는커녕 해야 할 일들에 눌려 메말라 있던 나를 낭만으로 적셔준 것이 바로 이 나카노시마의 석양이었다. 아마도 근 몇 년간 본 석양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석양을 바라보며 조급했던 내 마음도 풀렸고, "그래. 기왕 온 것 너무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재미있게 즐기다가 가자!"라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경직되어 가던 내 마음을 풀어준 이곳 나카노시마와 기타하마에, 다시 한번 저녁노을 질 때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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